아마도 20년쯤 전의 일로 기억된다. 주제네바대사로 재직중이던 어느날 공항에 나갔다가 매점에 들렀다. 성탄절 무렵이라 캐럴이 들려오고 있었다. 감기약 하나를 골라 계산대로 갔더니 미국인 병사 한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기 차례가 오자 젊은 병사는 선물용으로 보이는 초콜릿 봉지를 내놓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미국돈도 받습니까”고 묻는 것이 아닌가. 당시에는 미국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달러화의 환율이 스위스 프랑화나 서독 마르크화에 비해 연일 약세를 보이고 있었고 서독 각지에서는 연말연시에 미국병사들을 집으로 초대해 위로한다는 기사가 자주 눈에 띌 때였다. 그래도 그렇지 어쩌다가 막강하던 달러화가 이런 천대를 받게 되었는가 놀라면서 매점을 나서는 미국병사의 뒷 모습을 바라보던 생각이 난다. 요즈음 우리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자금 지원까지 요청하게 된 처지를 개탄하면서 걱정스레 매일을 보내고 있다. 한때는 올림픽을 유치하여 세계속의 한국을 자랑했고 물가안정과 흑자기조를 이루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대만의 외환보유고를 따라잡을 수 있으리라며 기뻐했던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외국의 어떤 주간지는‘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잃어버렸고 10년을 후퇴했으며 한국인들의 앞에는 길고 혹심한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고까지 혹평했다. 지난해 11월23일 정부가 IMF에 긴급자금지원을 요청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에 대한 원인규명과 대처방안에 관하여 활발한 논의가 계속되어 왔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국민사이에는 이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하며 고통을 분담하고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는 공감대만큼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우리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 모두가 ‘글로벌 룰(Global Rule)’을 충실히 지키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그동안 세계화란 용어를 즐겨 써왔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 된 한국이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화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상식과 관행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국제적인 상식과 관행, 이것이 곧 ‘글로벌 룰’이다. 투명한 기업경영을 해야 하며 정경유착을 배제하는 일은 물론이고 교통규칙을 지키고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은 삼가는 등의 일도 모두 ‘글로벌 룰’에 속한다. ‘글로벌 룰’을 무시하거나 이를 자주 어길 때는 국제사회에서 따돌림을 받게 되고 같은 동네에서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부류에 속하게 된다. 지정학적으로 세계 최강국들과 이웃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이 한창이던 19세기의 급변하는 주변정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국권을 상실하는 비극을 맛보았다. 해방후 독립은 하였지만 국토분단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고 냉전이 종식되어 무한경쟁의 시대로 접어든 오늘의 우리 주변정세는 그때보다 나을 것이 없다. 세계가 날로 좁아지고 국경없는 사회로 되어가는 21세기에 남의 비웃음을 받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글로벌 룰’에 어긋나는 우리의 관행은 하루속히 고쳐야 한다. 졸속과 속임수를 자랑으로 생각하고 책임회피를 안전한 처세술로 여기는 등의 일도 그만두어야 하며 혈연 지연 학연 등에 대한 지나친 집착도 버려야 한다. 높은 생활수준과 번영을 누리면서도 근면하고 검소하며 교만하지 아니한 서구인들의 생활태도를 본받아야 하며 인치(人治) 아닌 법치(法治)로 공동체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20년전에는 허약했던 미국의 달러화가 오늘의 위력을 되찾은 것을 거울삼아 우리도 힘을 모아 다같이 개혁에 동참한다면 지금의 시련은 오히려 내일의 도약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유사이래 많은 국난을 극복한 경험이 있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던 우리 국민은 IMF 의 시련도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인필자모이후인모지 가필자훼이후인훼지 국필자벌이후인벌지’(人必自侮而後人侮之 家必自毁而後人毁之 國必自伐而後人伐之·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김 당할 짓을 한 뒤 남이 업신여기는 것이며 집안은 스스로 파멸당할 짓을 한 뒤 파멸당하는 것이다. 나라도 정복당할 정치를 하니까 정복당하는 것이다―편집자). 어린 시절 선친께서 전해준 맹자의 가르침이 더욱 절실히 느껴진다. 노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