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해 인사청문회는 꼭 해야 한다. 그것도 새정부 출범 전인 2월24일까지 마치는 것이 좋다.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은 대선 때 인사청문회와 함께 ‘경제파탄 책임규명 청문회’를 공약했다. 사실 경제청문회는 좀 늦어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는 다르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사람 씀(用人)에 대한 검증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사람 씀은 중요하다. 정부와 기업,가계가 같이 고통을 나눠 걸머질 시기에는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필수적이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참을 수 있다’는 믿음이 서야 한다. 총괄적 리더십인 대통령은 물론이고 그의 권력을 분할행사하는 총리와 장관 개개인에 대해서도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어야 한다. 그 요체는 사전검증이다. 이 사람이라면 최소한 돈 먹고 일을 그르치지는 않을 것이라든지, 대통령에게만 잘 보이려고 거짓보고는 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미리부터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마음에 든다고 아무 사람이나 썼다가 국정을 망가뜨린 선례를 우리는 김영삼(金泳三)정부에서 똑똑히 보았다. 부정축재로 쫓겨나고 나라의 실상을 은폐하려다 물러난 장관이 어디 한두명이었는가. 김영삼정부의 장관은 장관(長官)이 아니라 단관(短官)이란 소리를 들었다. 5년동안 장관급에 임명된 사람만 1백50여명에 달한다. 평균 재임기간도 1년이 안된다. 전혀 업무와 상관없는 인물이 어느날 갑자기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가 몇달만에 바뀐 경우도 적지 않았다. 업무파악은커녕 부처의 국 과장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고 나간 장관도 있었다. 국정은 연습이 아닌데도 김영삼정부는 재임기간 내내 연습만 하다 떠나는 꼴이 됐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람 씀의 실패가 국정의 실패를 불렀다. 김차기대통령은 이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 그러려면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나라의 주요직을 혼자 결정해 맡길 수는 없다. 인수위나 차기총리 내정자와의 몇마디 상의만으로 ‘나눠먹기’를 해서는 더더욱 안된다.철저한 사전검증을 통해 사람을 써야 한다.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인사청문회다. 미국의 인사청문회는 철저하다.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당선자는 바로 고위관리의 인선작업에 들어가 1만여명 이상 명단을 확정해 상원의 인준절차에 부친다. 대상은 차관보급 이상 관리와 각종 독립규제위 위원, 대사 등 외교사절, 연방대법관까지 다양하다. 물론 이들 모두가 청문회 대상은 아니다. 대부분 서류심사만으로 자동적으로 인준받는다. 그러나 장관 등 고위직 6백여명은 재산형성과정 과거행적 정책소신 자질 도덕성 등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받는다. 인준거부는 많지 않다. 상원이 새 대통령의 내각구성권을 어느 정도 존중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 스스로 인준거부 때의 정치적 타격을 우려해 흠없는 인사를 고르려 애쓴 점도 있다. 때문에 미국 각료들의 평균수명은 3년이 넘는다. 우리에게는 아직 인사청문회 제도가 없다. 지난해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국회법을 고쳐 제도를 도입하려 했으나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여당이 야당 되고 야당은 여당이 됐다. 대통령의 고위관리 임면권을 견제하는 것은 지금 거야(巨野)한나라당의 몫이다. 2월 국회에서 국회법을 고쳐 청문회제도를 도입, 새정부 인선이 바르게 되도록 ‘협조’하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봄 직하다. 둑은 단숨에 무너지지 않는다. 미세한 금, 작은 구멍이 차츰 커지고 넓어져 급기야 큰 둑을 무너뜨린다. 지금 한국 공동체의 둑은 무너지고 있다. 50년 동안 생긴 금과 구멍이 커져 이젠 때울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지경이 됐다. 김차기대통령은 이제 새 둑을 쌓아야 한다. 바른 인사에서 그 둑쌓기의 첫 삽을 뜨기 바란다. 민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