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의 한파는 달동네 서민에게 ‘시름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욕은 용솟음 친다.
4일 서울 강동구 하일동. 어둠이 깔리기가 무섭게 동네는 적막에 빠져들었다. 집안에 화장실을 갖지 못한 주민들이 가끔씩 용변을 보러 다니느라 문을 열 뿐이다.
또 다른 달동네인 서울 구로구 구로3동. 60%를 넘는 가구가 연탄을 때는 이곳 골목길의 담벼락에 엉성하게 매달려 있는 굴뚝에서 매캐한 냄새가 풍긴다.
2명이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의 좁은 골목으로 라면봉지를 든 아낙네들이 종종걸음을 친다.
지난해 10월 이후 건설공사가 급격히 줄어 주로 일용 노동자로 일하는 달동네 사람들은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졌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각종 공사가 금지되는 혹한기(酷寒期)마저 겹쳤다.
벽돌공 왕근모(王根模·46·구로3동)씨는 “1년에 1백50일 일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작년 12월부터는 단 하루도 일을 한 적이 없고 동료 중에는 추석 이후 현장에 나가보지 못한 경우도 많다”고 털어 놓았다.
대부분 맞벌이를 해왔던 여자들도 사정이 나을 것이 없어 지난해 말부터 완구봉제 재봉틀작업 전자제품 부분조립 등의 일거리가 뚝 끊겼다.
모진 세파가 몰아치고 있지만 달동네 사람들이 자포자기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잠든 자정녘 모처럼 일거리가 생긴 서용남(徐容南·52·하일동)씨 집에서는 편물기 5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신명나게 돌아갔다. 인건비가 싼 중국에 하청을 주던 작업의 일부가 서씨에게 돌아왔기 때문.
비닐하우스에서는 김재규(金在圭·63·하일동)씨 내외가 구슬땀을 닦아가며 하루종일 정성스레 작물을 손질한다.
“나라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추위를 타는 곳이 달동네지만 우리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린 겨울 밤, 달동네 주민들의 다짐이다.
〈하태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