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을 청하기로 결정되던 날 도하 일간신문에서는 그날을 국치일이라고 대서특필하였다. 국가운영의 근간이 되는 경제정책이 우리의 자율적인 결정에 의하지 아니하고 외국의 권유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으니 그렇게 개탄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의 잘못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그 뿌리에는 우리 모두가 분수에 넘치는 사치와 낭비가 있었다는 것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이날은 국치일일 뿐만 아니라 민치일(民恥日)이기도 한 날이다. 지난 30여년 동안 우리는 오직 기아에서 해방되고자 허리띠를 졸라매고 많은 것을 희생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이 민족의 열망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다니 참으로 허망하기 이를데 없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뿌려놓은 씨를 우리가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시대에 살고 있다고 자부하면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기아에서 해방된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 남겨주겠다고 자신하였다. 불과 3년 전 영국의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 94년 10월호에는 앞으로 2020년의 경제대국으로서 중국 미국 등에 이어 한국을 일곱번째로 평가한 바 있다. 이런 장밋빛의 청사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더욱이 이 시련을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이런 허망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제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인 검소 근면 성실한 자세로 다시 돌아가 이 시련을 극복하여야만 한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각오를 다지고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시련을 극복한다 해도 진정한 극복이 아니라 잠시 비켜나갈 뿐인 것이다. 이번 IMF 시련의 극복을 위해서는 국가 전체적인 차원에서의 효율성 제고가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교육분야도 예외일 수는 없다. 사회 전반의 발전에 비하여 교육분야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상대적으로 낮았으나 그동안 정부에서 추진하여 왔던 교육개혁과 국민총생산(GNP)의 5% 재정투자 등으로 교육여건의 개선이 상당히 이루어진 것이 또한 사실이다. 이제부터는 대학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안일한 사고로부터 벗어나 국제경쟁력 있는 교육환경 조성에 적극 매진하여야 할 때다. 앞으로 21세기는 지식산업의 사회가 이루어질 것이 예견되며 또한 세계는 국경없는 경쟁사회가 될 것이다. 국가의 경쟁력은 누가 더 수준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이에 대비하지 않고 국제경쟁력 있는 인재양성을 게을리 한다면 이번 시련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사 벗어난다 하더라도 언제 또 다시 이러한 역경이 찾아올지 모를 일이다. 이와 함께 기업경영에 있어서 경제정의를 구현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업관의 정립이 필요하다. 서양의 논리가 반드시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경제적으로 융성하게 된 배경에는 정당한 부의 축적은 사회에서 존경받을 수 있다는 청교도적인 기업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우리 국민의 가치관이 바뀌어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정경유착을 비롯하여 부도덕한 기업의 행위가 계속 이어질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기업인은 기업인대로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투명한 경영을 통해서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인이 되어야 하며 정당한 기업활동을 하는 기업인에 대해서 국민은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끝으로 이제 우리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여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회를 건설하는 국민운동을 벌여나가야 하겠다. 교통질서를 지키는 일, 쓰레기 버리지 말기와 같은 작은 일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소양을 함양시키고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기 전에는 아무리 이번의 시련을 극복한다고 하여도 선진국의 국민으로 대우받을 수 없다. 군사독재의 잔재이기는 하지만 지금 같아서는 유신 때의 새마을운동이라도 다시 시작하였으면 하는 심정이다. 선우종호(서울대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