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만큼‘국제통화기금(IMF)시대’에 사랑스러운 느낌이 절로 드는 말이 있을까. TV 3사 역시 거품빼기를 명분으로 적극적인 프로그램의 재활용에 나서고 있다. 신년연휴는 방송사의 이같은 ‘재활용품 세일’이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KBS ‘일요스페셜―한반도 탄생 30억년의 비밀’ SBS ‘이용운 일가의 북한탈출’ 등 공들인 수작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지만 TV 화면은 대부분 재방송분과 오락물로 채워졌다. 특히 영화는 어린이용 만화를 제외하고도 무려 30편이 방영됐다. 몇 편을 빼면 ‘그 밥에 그 나물’식으로 재탕 내지 삼탕이었다. 또 주말 오전 11시에서 오후 5시까지의 ‘전통적인’ 재활용 시간대는 MBC ‘그대 그리고 나’ ‘남자셋 여자셋’ KBS ‘웨딩드레스’ ‘용의 눈물’ SBS ‘사랑하니까’ 등 드라마 재방송이 차지했다. 문제는 재활용 자체가 아니라 ‘품목’의 선택에 있다. 폭력 일색으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KBS ‘프로젝트A’ 등 홍콩 영화들이 10편씩이나 재활용 목록에 들어갈 가치가 있을까. ‘미세스 다웃파이어’ 등 외화나 어린이용 만화는 ‘재방송 단골손님’으로 신물이 날 지경. 연예인이 출연하는 게임과 스타쇼 형태의 오락물도 재미보다는 식상함을 불러 일으켰다. 명절 때마다 등장하는 제목과 출연자만 조금씩 바뀐 이런 종류의 오락물은 ‘아이디어의 빈곤’으로 생기는 또다른 의미의 재활용품이다. 방송가의 ‘귀족주(貴族株)’로 분류되는 드라마의 재활용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현재 방송사별로 방영되는 드라마는 10여편 안팎으로 지나치게 많다. 그것도 모자라 MBC ‘아들과 딸’ SBS ‘옥이 이모’ 등 재방 드라마는 오전 8시대까지 점령했다. 이미 드라마가 평일 편성표상의 노른자위인 ‘프라임 타임대’를 독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다시 주말 시간대까지 차지할 이유가 없다. 물론 여기에는 방송사의 속사정도 깔려 있다. 외화 한편의 수입에 수만달러에서 수십만달러가 들어간다. 드라마는 교양프로에 비해 제작비가 서너곱 투자되는 고비용 상품이다. 비싼 돈 주고 들여오고 만들어낸 프로를 한번만 틀 수 없다는 것이다. 시청률을 근거로 시청자들이 영화와 드라마를 선호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재활용의 기준은 시청률과 “들어간 돈은 뽑아야지”라는 식의 ‘밑천타령’이 돼서는 안된다. 고장난 비디오처럼 반복되는 영화나 드라마가 아니라도 심야시간대로 밀려났던 볼 만한 교양 프로들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김갑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