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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현장 지구촌 리포트②]전자화폐

입력 | 1998-01-08 09:44:00


세계 비즈니스의 중심지 미국 뉴욕시 맨해튼. 이곳에서 시티뱅크 체이스맨해튼은행 창구를 찾는 고객 수가 요새 부쩍 줄었다. 이들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 5만명이 전자지불(支拂)업체인 베리폰에서 만든 ‘개인휴대용현금입출금기(PATM)’로 집이나 사무실에서 은행에 돈을 넣거나 인출해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뉴욕 은행과 마스터카드, 비자, 베리폰이 지난해 10월부터 추진한 디지털화폐 시범서비스인 이른바 ‘뉴욕시티 파일럿’ 덕택이다. 물론 이 PATM 단말기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지폐나 동전이 나오지는 않는다. 뉴요커들은 PATM과 스마트카드를 이용해 대금 지불이나 계좌이체, 세금 납부와 같은 업무를 척척 해낸다. 단지 필요한 것은 단말기에 연결할 수 있는 전화선이나 랜(LAN)선뿐이다. 종이나 금속 화폐가 아니라 고도로 암호화된 디지털신호의 조합인 이른바 ‘전자 화폐(Electronic Cash)’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베리폰이 첫 선을 보인 PATM은 전자계산기처럼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크기에 가격도 1백달러로 매우 싸다. 이 단말기는 무엇보다 고객이 인터넷이나 컴퓨터를 몰라도 간단한 손조작만으로 전자거래가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전자거래를 활용하면 굳이 은행을 찾아갈 필요없이 누구나 앉은 자리에서 웬만한 금융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또 고객들은 PATM뿐만 아니라 PC뱅킹 폰뱅킹 서비스나 웹TV 셋톱박스 등을 이용할 수도 있다. 아직은 낯설기만 한 개인금융거래시스템이나 전자화폐는 21세기 정보시대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서비스로 자리잡을 것이다. 사람들은 길거리나 은행에 가서 돈을 찾거나 많은 현금을 위험하게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진다. 궁극적으로는 비싼 제작비와 위조화폐 문제로 골치썩이는 ‘아날로그 화폐’, 즉 종이나 금속 화폐의 종말도 점쳐볼 만하다. 회사에서 받는 봉급이나 아이들에게 주는 용돈에 이르기까지 전자지갑에서 디지털신호로 주고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치 인터넷에서 자료를 주고받는 방식과 같다.지난해 12월말 미국 실리콘밸리 샌타클래라에 새 사옥을 마련한 베리폰(www.verifone.com). 벤처기업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전자상거래 관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분야에서 선두업체로 급히 떠오르면서 지난해 6월 휼렛패커드(HP)에 전격 인수되었다. 이 회사의 새 사옥에 가면 차세대 전자상거래 시대의 풍경을 미리 엿볼 수 있다. 사원들은 스마트카드 하나로 봉급과 출장비도 받고 신분증명, 출퇴근, 의료보험, 식비 지불, 인사 관리까지 현금 한푼없이 해결하고 있다. 베리폰은 올해부터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병원 학교 기업과 손잡고 전자상거래와 전자화폐 서비스를 시범 운용해나갈 계획이다. 또 베리폰은 세계 곳곳의 은행에 6백만개의 ATM 시스템을 공급해왔다. 이중 3백만개의 단말기는 앞으로 스마트카드와 연계된 전자지불 서비스를 펼칠 수 있어 이 회사의 장래는 그 어느 때보다 밝다. 베리폰과 함께 실리콘밸리의 레드우드시티와 버지니아주 레스턴에 각각 사무실을 둔‘사이버캐시(www.cybercash.com)’ 역시 전자화폐 개발업체로 눈길을 끌고 있다. 사이버캐시는 베리폰을 설립한 빌 멜톤과 댄 린치가 94년 공동설립한 회사. 사이버캐시 홈페이지에는 디지털화폐 소프트웨어를 소비자와 판매자를 위해 각각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소비자는 이 회사의 ‘사이버캐시 월넷(지갑)’ 프로그램을 전송받아 PC에 설치하면 자신의 사용자번호(ID)와 암호를 부여받는다. 사용자는 인터넷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신용카드나 은행 계좌번호를 위험하게 노출할 필요없이 ID와 암호를 넣으면 사이버캐시의 네트워크를 통해 대금이 안전하게 지불된다. 판매회사는 ‘캐시레지스터’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이 보낸 돈을 받지만 고객의 은행계좌나 신용카드번호는 전혀 알 수 없다. 사이버캐시의 전자화폐 서비스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암호화 기술과 편리한 지불방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미 1천개가 넘는 기업이 이 사이버캐시 시스템을 애용하고 있다. 디지털 보안기술이 한층 강화되고 사용이 편리해지고 있는 전자 화폐 시스템은 세계 경제에 일대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전자상거래’와 함께 ‘디지털 금융혁명’으로 우리 곁에 바짝 다가온 것이다. 〈샌타클래라·레드우드시티〓김종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