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간신히 국가부도 위기를 넘겨 한숨 돌리는가 싶던 외환위기가 새해 들어서도 여전히 긴박하다. 정부대표가 국제금융시장을 찾아가 달러확보에 나서고 해외 큰손들이 잇따라 방한해 호의적인 제스처를 취하곤 하지만 어느것 하나 속시원히 풀린 것이 없다. 1.4분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외채는 2백20억달러고 단기외채만도 1백90억달러를 넘는다. 이달 중 갚아야 할 금액은 약 1백40억달러다. 급한대로 상환 연장기간의 최장기화, 단기외채의 장기외채로의 전환, 협조융자 유치, 외화(外貨)표시 국채 발행 등 네갈래로 위기를 헤쳐나간다는 것이 정부의 전략이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뜻대로 먹혀들지 않아 외화조달에 피를 말린다. 최근 외채상환 연장비율이 높아져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일본과 동남아의 통화혼란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외환위기 조기수습에 실패할 경우 새롭게 밀어닥칠 위기를 엄중 경계해야 할 것이다.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약속을 철저히 이행할 것이라는 신뢰를 주면서 해외 인식이 달라지기는 했다. 그러나 외환협상을 위해 국제금융대사(大使) 투자유치단 유력인사 등을 산발적으로 해외에 파견해 국제금융계에 혼선을 초래한 것은 문제다. 정부대표성을 부여했다고는 하나 정권교체기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협상창구 일원화가 바람직하다. 차기정부 실세(實勢)로 사절단을 구성해 일괄협상을 벌이기로 한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협조융자와 외화채권 발행, 장기외채로의 전환 등은 일괄협상을 벌이되 단시일내에 매듭짓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시일을 끌수록 금리나 상환조건이 불리해지고 시장개방같은 요구가 추가될 가능성이 많다. 또 외환불안이 장기화하면 대외부담 증가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금융시장 혼란으로 대량부도와 수출기업 애로가 갈수록 심해질 것은 뻔하다. 당장은 외화부도 막기에 정신이 없지만 몇달만 지나면 떠오를 가장 큰 문제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외채 원리금 부담이다. 정부는 외환협상 과정에서 금리를 최대한 낮추는 데 외교능력을 십분 발휘해야 한다. 금명간 진행될 국제신용평가기관의 평가에서도 급락한 한국의 신용등급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투명한 자료제공과 협력에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김차기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외화차입보다는 외국인 직접투자가 바람직하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이는 옳다. 과거 정부도 생각은 비슷했지만 투자유치에는 실패했다. 외국인이 투자하게 하려면 기업여건을 먼저 조성해야 한다. 정리해고를 포함한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와 금융구조조정 재벌개혁 규제철폐 등 내부개혁을 선행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일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