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에 본격 투자한 외국인 주주들 눈치를 보느라 상장회사들의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다. 지분이 늘어난 만큼 소수주주권을 ‘무기’로 목소리를 높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현행 상법에 보장돼 있는 소수주주권은 △이사 및 감사 해임청구권 △주총소집청구권 △회계장부열람권 △회사의 업무 및 재산상태 검사권 등. 지난해부터 시민단체들의 주도아래 이런 권리를 행사하려는 움직임이 간간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권리 위에 잠자는’ 주주들이 대부분. 그러나 부실경영의 책임을 물어 경영진을 과감히 갈아치우는 외국인들이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할 경우 이번 주총시즌에는 적잖은 파란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6백12개 12월 결산법인들은 오는 2,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초비상이 걸렸다. 외국인과 합작해 설립된 회사들은 지난 한해동안의 경영성과를 담은 자료를 돌려가며 합작파트너의 이해를 구하느라 법석을 떨고 있다. 지난해 12월 계열사인 SK증권(옛 선경증권)에 7백50억원을 예탁금 형태로 지원했던 SK텔레콤은 외국인 주주들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고 곧바로 자금을 회수했다. “요즘 금리도 높은데 왜 증권사에 연 5%밖에 못받고 거액을 맡겨 주식가치를 떨어뜨리느냐”는 반발이었다. 94년말 삼성자동차 출자를 결정한 삼성전자도 “포화상태인 자동차산업에 회사돈을 투자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외국인 주주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삼성전자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 95년2월 20%의 무상증자를 실시, 주주들에게 5주당 1주의 신주를 줬다. 주식시장의 ‘큰 손’인 외국인들을 끌어들여 주가관리를 하려는 회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부도를 낸 동서증권의 인수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국민은행은 증권가에 소문이 나돌자 “한때 검토한 적은 있으나 포기했다”며 즉각 부인했다. 이 은행의 고위 관계자는 “부실기업을 인수한다는 소문이 나면 외국인투자자들이 등을 돌린다”며 보도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한 상장사 임원은 “과거 국내 주주들만 상대할 때의 주총은 사전에 계획된 시나리오에 의해 은근슬쩍 넘어갈 수 있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고 걱정했다. 〈정경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