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난 뒤 여성은 ‘사랑 때문에’ 더이상 일하지 않고 남성은 ‘사랑 때문에’ 두사람 몫을 일한다….” 일견 어거지같은 이 주장은 에스테 빌라라는 여자의 책 ‘어리숙한 척, 남자 부려먹기’에 나오는 말이다. 버지니아 울프도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은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의 두배로 확대반사하는 거울노릇을 해왔다”고 했다. 이때문에지구의절반이 자기보다 열등하다고 믿게된 남자들은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 남자답지 못하달까봐 힘들단 소리도 못하고 고통받다 결국 여자보다 8년이나 일찍 죽는다는 슬픈 얘기다. 요즘 유행하는 ‘남편 기살리기 운동’을 보면서 나는 문득 이게 한국판 ‘남자 기살려 부려먹기’일수도 있는데 남자들이 모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리해고를 하기 시작한 일터에서 ‘(먹여살려 줄)배우자가 있는 여자’‘(먹여살려야 할)부양가족이 없는 처녀’의 순으로 자르는 것도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절반을 부양하는 책임을 떠맡기는 것인데, 왜 남자들은 혼자 그 짐을 지려하는지 마구 안타까워졌다. 너나없이 고통분담을 강조하고 있지만 나는 ‘걱정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믿는다. 어떤 사안에 대해 한 사람이 지독하게 걱정하면 거기 연루된 다른 사람은 그 사람만 믿고 그만큼 걱정을 덜하는 법이다. 지금의 경제위기도 남자는 밖에서 돈벌고, 여자는 안에서 아끼는 것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남녀 불문하고 같이 걱정하고 함께 기살아서 능력대로 뛰어도 될까말까다. 거품빼기와 구조조정은 사회 경제차원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남자들이 더이상 가부장제의 자랑스러운 수혜자가 아니라 억울한 피해자이며, 남자도 거품살을 빼고나면 여자와 똑같은 감정과 힘을 지닌 인간임을 인정해야 할 때가 IMF한파가 닥친 지금이 아닐까 싶다. 김순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