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93년 2월25일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직후 보여준 ‘문민행보’는 지금 되돌아봐도 숨가쁜 것이었다.2월25일 취임식, 26일 새정부 조각발표 및 청와대 앞길개방, 27일 대통령 내외 재산공개, 3월1일 ‘부패와의 전쟁’선포, 3월4일 안가(安家)철거 및 “재임 중 한푼도 받지 않겠다”는 정경유착 근절선언….
3월4일 오전. 김대통령은 집무실에 들어온 박관용(朴寬用)비서실장에게 “박실장, 내가 정치자금을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려는데 박실장 생각은 어때”라고 운을 뗐다. 순간 박실장은 당황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에 있을 때 최병렬(崔秉烈)의원과 오랫동안 의견을 나눠오던 문제이기는 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말은 거의 ‘기습’이었다.
“각하, 정말 대단한 결심입니다”라고 말을 받으면서도 박실장은 한가지 우려를 덧붙였다. “여당이라는 곳은 그동안 당총재가 운영해 오다시피 했는데 당운영 방안도 생각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김대통령은 “이미 결심이 섰다”고 못을 박았다. 박실장은 “각하가 그렇게 결심하셨다면 그렇게 하시죠”라는 말로 얘기를 끝냈다.
박실장과 얘기를 마친 김대통령은 곧장 청와대 출입기자단 오찬간담회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당선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어느 한사람,어느 경제인으로부터도 단 1전의 돈도 받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돈을 가져왔지만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다시 말해 앞으로 5년간은 누구도 나에게 돈을 줄 생각을 하지말라는 겁니다. 절대로 받지 않을 것입니다. 추석이라고 해서 떡값 아니라 차값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김대통령은 또 “이것은 우리 정치사의 큰 변화”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민자당쪽 ‘개혁사령관’을 자임하던 최형우(崔炯佑)사무총장까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과거엔 청와대에서 매달 30억원의 운영자금을 당에 내려보냈으나 앞으로는 받지 않을 것”이라고 ‘과거 기밀’을 누설했다. 기업이 청와대에 정치자금을 헌납하고, 당총재인 대통령이 이중 일부를 여당에 내려보내온 정경유착의 ‘고리’를 여당 사무총장이 직접 고백한 것이었다.
정치권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폭풍전의 고요’같은 분위기마저 감지됐다.
사실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는 선언은 김대통령의 취임후 1백일간 계획을 담고있는 이른바 ‘효자 프로젝트’에도 없었던 ‘대사건’이었다.
‘효자 프로젝트’에는 원래 이날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12동(棟), 1만9백40평에 이르는 안가를 철거하겠다는 선언을 하도록 돼 있었다. 김대통령은 물론 이날 안가철거도 발표했다.
“청와대가 갖고 있는 안전가옥이 있습니다. 3공 때부터 역대 군사정권이 애용해오던 장소입니다. 여기에서 밀실정치가 이뤄지고, 여기에서 여러가지 불행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김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역시 ‘한 푼도 받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김대통령이 이날 오전 박실장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의견을 구하긴 했지만 그 때는 이미 주돈식(朱燉植)정무수석이 작성한 ‘오찬간담회 말씀자료’를 들고 있었다.
주돈식씨의 기억. “오찬일 하루전인 3월3일 대통령이 불렀습니다. ‘나는 앞으로는 정치자금을 일절 받지도 쓰지도 않겠으니 이런 내용을 담아 기자들과의 오찬대화 준비를 하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내용이 사전에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고 박관용비서실장에게도 사전에 보고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는 겁니다.”
계속되는 주돈식씨의 회고. “당시의 전후좌우 상황을 보면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김대통령 자신의 결심이었습니다. 누구도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래전에 건의한 사람, 보고한 사람은 있었겠지만 김대통령은 아무 말없이 스스로 결심했음에 틀림없습니다.”
정치자금 수수거부 선언이 김대통령 스스로의 ‘고뇌에 찬 결단’인 것은 분명한 듯 하지만 당시 주수석도 모르는 일이 하나 있었다.
김대통령이 박실장까지 따돌리고 주수석에게 ‘오찬간담회 밀지(密旨)’를 내리기 나흘전인 2월27일. 전날 문민정부 초대내각을 발표한 김대통령은 감회가 새로운 듯 ‘오랜 지인(知人)’을 청와대 만찬에 초청했다. 외부인으로서는 청와대의 ‘첫손님’이었다.
김대통령〓“어제 발표한 조각(組閣)내용이 어때.”
지인〓“(군출신인 황인성 국무총리를 지칭하며)문민정부라고 하면서 총리에 군인이 뭡니까. 그리고 황산성변호사를 환경부장관에 임명했던데 황변호사가 환경에 대해 뭘 안다고…. 그건 그렇고 이제부터는 돈을 받지 마십시오. 솔직히 박정희대통령이나 전두환 노태우대통령은 모두 직접 정치자금을 걷어 국회의원 장관 대사들한테 뿌렸지 않습니까. 김대통령은 절대 그러지 마십시오. 그렇게만 하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될 겁니다.”
굳이 ‘지인’의 건의가 아니더라도 김대통령은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가는 대선을 치르면서, 그리고 김대통령 자신이 기자간담회에서 직접 밝힌 것 처럼 당선후 재벌들로부터 과거의 ‘정치자금 헌납비화’를 들으면서 정치자금 근절을 문민정부의 ‘사명’으로 인식해갔다.
당선 직후인 92년 12월 어느날. 상도동 시절부터 ‘집사’역할을 해온 장학로(張學魯)씨가 김당선자에게 돈얘기를 꺼냈다가 혼이 났다는 일화는 ‘YS결단’의 뿌리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는지를 보여준다.
“각하, 이제 비서들에게도 월급외의 돈을 좀 나눠줘야 할 것 같습니다. 선거도 이겼고, 전처럼 남들한테 얻어먹고만 다닐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제는 밥값도 내야 합니다.”
김당선자는 그러나 장비서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친 소리’라면서 “씰데없는 소리 하지말라”고 일축했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3년2개월만인 96년 3월, 청와대부속실장인 장학로씨는 90년 3당합당 이후 모두 27억원을 사례비와 떡값 명목으로 받은 혐의로 구속되고 김대통령은 “모범을 보여야 할 청와대비서관이 파렴치한 비리를 저지른 것은 국민에게 대단히 송구스런 일”이라고 사과해야 했다.
여러 정황과 증언을 종합해 볼 때 대통령이 직접 정치자금을 거둬들이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한다는 생각은 당시 김당선자에게 하나의 ‘강박관념’처럼 자리잡고 있었다. 대선 이후엔 특히 그랬다.
‘천문학적인 자금동원’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비록 김당선자처럼 ‘천문학적 대선자금’의 전모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당시 몇몇 대선관계자들도 막연하게나마 정치자금 관행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고 깨달았다.
당시 인수위 관계자의 증언.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부정방지위원회 설치문제를 놓고 논란을 벌일 때마다 부정부패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통령이 돈을 받지않아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특히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박관용의원과 최병렬위원이 그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공론화하기엔 너무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더구나 인수위의 공식의견으로 기록, 건의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박관용의원이 취임후 적절한 시점을 택해 대통령에게 구두로 건의키로 하고 토의를 끝냈습니다.”
아직까지 김대통령이 재임 중 직접 정치자금을 받은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밝혀진 측근과 수하(手下)들의 부정비리는 뭘까. 단순히 김대통령이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다(上濁下不淨)’는 말을 너무 믿은 결과였을까.
〈김창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