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5월 미국 뉴욕 소호의 ‘엑시트 아트(Exit Art)’. 비영리 전시공간인 이곳에 한국작가 10명이 진출했다. 하나같이 실험정신으로 충만한 도전적인 작가들. 전시회 이름은 ‘호랑이의 눈―한국의 도전적 작가 10인전’. 전시는 5월28일부터 7월5일까지 한달 넘게 계속되며 대단한 평가를 받았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한국에서 온 현대미술의 신비함’이란 제목의 미술평을 실었다. 리뷰, 빌리지 보이스 등도 지면을 할애했다. 이는 한국문화의 힘과 한국미술의 저력을 미국을 비롯한 세계 화단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이 전시가 고스란히 한국으로 옮겨진다. 15일부터 2월28일까지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 동아일보사와 일민미술관이 함께 주최하는 이 전시회는 한국사회가 가진 정치적 문화적 현상을 현대미술의 실험적 추이에 비추어 조명해보는 자리. 급격한 근대화로 인한 사회적 소외현상, 현대인의 따분한 일상, 환경문제, 문화적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의식…. 조각 비디오 테크놀러지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이를 표현한다. 한 작품을 보자. 길이 10m, 폭 1m10㎝의 거대한 검은 천들. 천위를 사납게 흘러내리는 흰색의 아크릴선. 그 위에 세차게 퍼부은 소나기의 흔적. 공해로 파괴되고 있는 생태계의 험난한 상황을 표현한 이승택(65)의 설치작품이다. 테크놀러지 작가인 김영진(36)의 물방울분사작용, 여러 두상들이 전기장치로 움직이며 현대인들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여주는 임영선(38)의 설치,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4차원의 시각예술을 전공한 홍성민(33)의 비디오영상. 육태진(36)은 옛가구에 비디오와 동력장치를 가설해 현대인의 반복적 현실을 조명했다. 윤동천(40)과 김명혜(37)의 설치작품도 볼 만하다. 윤동천은 티셔츠와 문자를 사용해 사회의 강요된 이데올로기를 표현하고 김명혜는 열선과 압력계를 이용해 억압된 상황을 제시한다. 조숙진(37)은 폐품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고 임충섭(56)은 단순한 형태로 빚어진 거대한 조각작품을 출품한다. 박화영(29)은 다큐멘터리형식을 통해 현대인의 반복적인 일상을 표현한다. 일민미술관측은 서구 중심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세계 질서속에서 동양사회의 정체성을 모색해보고 또 정보화의 시대에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한국의 실험미술작가들을 통해 진단해 보기 위해 이번 전시회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전시회가 열렸던 ‘엑시트 아트’는 82년에 설립된 공간으로 실험적이면서도 역사성이 강한 작품 등을 전시해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곳. ‘호랑이의 눈’전은 세계 각국의 미술동향을 소개하고자 하는 새로운 전시기획의 첫번째 순서로 마련됐다. 큐레이터는 ‘97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의 커미셔너를 맡았던 김유연. http://www.ilmin.or.kr.02―721―7772. 〈송영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