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반환점을 돌아선 97∼98프로농구. 정규리그 절반이상을 소화한 12일 현재까지의 판세는 현대 기아의 상위권 고수와 SK 동양 삼성의 약세로 좁혀지고 있다. 상위권판도는 당초 예상을 비켜가지 않았지만 바닥을 기는 팀들의 면면은 기대밖. 신생 SK의 꼴찌는 그렇다 치더라도 삼성과 동양의 최하위권 추락은 납득하기 힘들다. 두 팀 모두 시즌 개막전까지 우승후보로 거론되던 강호. 문경은과 김승기 등 ‘거물’이 복귀한 삼성이나 알짜용병들의 가세로 날개를 달았던 동양의 몰락은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해답은 다른 곳에 있다. 2라운드 후반 이후 맹렬한 기세로 상위권을 위협하고 있는 대우가 좋은 예. 외곽을 빼곤 별반 내세울 게 없지만 선수 전원이 제몫 이상을 해주는 것이 약진의 원동력이다. 선수들이 능력이상의 힘을 내도록 하는 것이 감독의 용병술. 변변한 스타플레이어 한 명 없어도 꾸준히 성적을 내는 나래의 힘 역시 근원은 같다. 득점랭킹 10위안에 두 명이 포진한 최상의 공격력을 가지고도 번번이 상대에 수를 읽혀버리는 삼성. 용병과 토종 모두 한가닥하는 선수들로 짜여있지만 모래알같이 흩어지는 동양.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지 않았는가. 미국프로농구(NBA) 시카고 불스의 강점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필 잭슨감독이다. 개성이 강한 선수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절묘한 용병술이 오늘의 ‘최강 시카고’를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전력의 열세를 딛고 승승장구하는 팀과 우수한 자원을 확보하고도 힘 한번 못써보는 팀. 이들의 엇갈리는 명암 속에서 구슬을 꿰는 노련한 장인의 존재는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이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