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모 감독이 막바지 작업중인 영화‘아름다운 시절’은 올해 칸영화제를 겨냥하는 야심작. 이 영화에서 안성기는 미군들에게 여자를 알선하거나 전쟁통에 군용비품을 빼돌려 ‘기와집’을 짓는 군속 최씨 역이다. 그의 어린 아들 성민이와 친구 창이의 눈망울에 비치는 전쟁의 상흔, 그리고 아이들의 성숙이 작품의 테마. 창이는 미군들이 ‘누나들’을 겁탈하는 방앗간을 불지른후 실종되고 성민이는 비리가 드러나 만신창이가 된 아버지 최씨와 함께 소달구지를 타고 머나먼 황톳길을 떠나간다. 그 고된 길의 끄트머리에서 어린 성민이가 창이의 마지막 선물 미군 라이터로 얼굴을 환히 비쳐볼 즈음, 그런 1958년 현실 속의 소년 안성기는 자기 생애 최초의 출연작이 된 ‘황혼열차’에 데뷔했다. 아직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못했던 그 무렵, 역시 갓 데뷔한 여배우 김지미와 함께 김기만감독의 메가폰 소리에 움찔움찔 놀라며. 훗날 ‘국민배우’라는 다소 과분한 호칭이 붙게 되는 연기인생의 시작이었다. 그가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96년 ‘박봉곤 가출사건’을 끝으로 지난해 개봉관에서 사라졌던 그는 이를 자축하듯 올해 ‘아름다운 시절’‘이방인’ ‘퇴마록’을 선뵈며 ‘형사수첩’에 출연할 예정이다. 올해 마흔여섯. 버지니아 울프는 같은 나이에 쓴 일기 속에 “누구나 삶에 대한 통제력을 배워야 한다. 실제적인 조절능력을 말이다. 나는 지금 마흔여섯인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울프가 자기정체성 혼돈으로 결국 자살로 치뉴珌酬剩 반해 안성기는 마흔여섯 이전에도 이후에도 끊임없이 은막 위의 ‘자기정체’를 변화시키려 들고 있다. 요컨대 그는 견고한 자기 조절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개봉을 앞둔 영화 ‘이방인’에서 그의 모습은 ‘아름다운 시절’의 현실적인 가부장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해외를 유랑하다 폴란드에 들어선 독신 태권도 사범의 애수어린 낯빛이 그것이다. 최근 촬영에 들어간 ‘퇴마록’에선 마성과 신성(神性)에 대해 고민하는 재미있는 신부가 된다. 그동안 그의 곁으로 현대 한국영화사(史)가 지나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엄마”라고 부르며 따라다녔던 원로 조미령을 비롯, 허장강 황정순 김희갑 이민자 황해까지. 안성기는 그들과 함께 출연했던 시절에 대해 “꿈만 같다”고 회고한다. 이같은 한국영화사의 흐름 속에 그는 김동원 최무룡 신영균 신성일로 열거되는 남성 톱스타의 계보를 대물림한 적자(嫡子)다. 아역중단 후 십수년만인 지난 80년 ‘바람불어 좋은 날’로 성인배우로서의 재탄생에 성공한 이래 그는 20년 가까운 세월을 ‘정상의 스타’로 불려왔다. 이 강인한 생명력은 한 우물만 파기로 한 그의 집념 외에도 겸허하고 소탈한 그 특유의 ‘삶에 대한 통제력’에 크게 힘입었다. 실제 은막에서도 이같은 천성이 이어졌다. 윗대 스타들이 주로 멜로극의 미남연인이나 액션극의 영웅이었던데 반해 그는 주눅든 소시민, 역사의 무게에 눌린 희생양으로서 빛을 발해왔던 것이다. 헨리 밀러는 수기 ‘여든살로 접어들며’에서 “내가 진정 젊음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마흔부터였다”고 적고 있다. 은막인생 40년, 안성기를 사랑해온 팬들은 이제부터 다시금 불붙기 시작하는 그의 성숙한 광채를 올해 보게될 것이다. ◇ 안성기 대표작품 육성회고 ▼ 59년 「10대의 반항」 뜻도 모른체 『놀다가세요』 데뷔작인 ‘황혼열차’는 필름이 한컷도 없어요. 그땐 상영이 끝난 필름은 밀짚모자 테로 쓰이곤 했지요. ‘10대의 반항’은 샌프란시스코국제영화제 특별상 수상작입니다. 영화사 하던 아버님의 친구이셨던 김기영감독께서 저를 데뷔시킨후 이 작품에서 또 캐스팅하셨지요. 서울역 앞에서 ‘펨프질’을 하던 고아 역할이었어요. 술취한 아저씨들에게 가서 “쉬었다 가세요”라고 손을 끌던 역이었지요. 그땐 이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어요. 이 무렵 아역단골이 돼 여배우 옷가방 속에서 잠자는 세월이었지요. ▼ 81년 「만다라」선암사에서 삭발후 촬영 선암사에서 깨끗이 삭발하고 오대산에서 찍었던 작품입니다. 지산(知山)스님으로 나왔던 전무송선배는 잠들기 전에 금강경을 외곤 했어요.‘어둠의 자식들’에도 겹치기 출연했는데 머리가 짧아서 감옥 출소자로 연기했어요. ‘만다라’의 임권택감독이 이 사실을 알고“나한텐 말한마디 않고 출연했느냐”며 서운해 하셔서 몸둘 바를 몰랐던 기억이 생생해요. ▼ 84,85년 「고래사냥」 불난 장면 찍다 탈출 기절 거지왕초역할을 했지요. 속편까지 찍었는데 불난 지하실에 갇힌 장면을 찍다가 겨우 탈출한 다음 기절해버렸어요. 정말 죽을 뻔했지요. 이 작품을 비롯해서 제가 출연했던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 ‘천국의 계단’ ‘겨울 나그네’ 모두 작가 최인호씨 원작이에요. 저하고 무척 친해져서 이젠 제 두 아이의 천주교 대부가 되셨지요. ▼ 90년 「남부군」 목욕장면속에 누드 나와 지리산 월출산을 오르내리며 찍었던 ‘빨치산 영화’입니다. ‘시대의 금기’를 문학이나 영화가 다루는 것은 차이가 있지요. 영화가 다루는 순간 더 이상 금기가 안되거든요. 이때 빨치산 백여명이 계곡에서 목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귀퉁이에 제 누드도 나왔어요. 골육상쟁 속에 최후의 빨치산이 꽃잎을 어루만지는 장면을 찍으면서 가슴이 저릿해지더군요. ▼ 93년 「투캅스」 거친 형사역은 아직 못맡아 세속적인 형사를 다룬 코믹영화입니다. 이 해에는 대조적인 두 작품에 출연했는데 팬들이 저를 보고 “야, 안성기다”라고 말하면 ‘투 캅스’를 본 사람이고 “안성기씨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면 ‘그 섬에 가고 싶다’를 본 사람이었지요. 그러고 보면 저는 거칠고 우악스런 영웅 같은 형사역은 못 맡아본 것 같아요. ▼ 98년 「이방인」 주먹으로 송판깨다 피흘려 폴란드에서 공부한 문승욱감독과 함께 찍은 작품입니다. 태권도사범으로 우연히 스친 폴란드 여인과 사랑을 하는 이방인역할이지요. 아름답고 따스한 작품입니다. 격파장면에서 주먹으로 송판을 깼는데 피가 흘러나왔습니다. 당황해하고 있는데 촬영감독이 “한번만 더 찍자”고 하더군요. ‘이게 내 인생’이라고 생각했지요. 〈정리〓권기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