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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스포츠]이제 축구는 「호나우두」로 통한다

입력 | 1998-01-13 20:04:00


축구는 곧 ‘펠레’였다. 그리고 40년. 이제 축구는 ‘호나우두’로 통한다. 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17세의 무명 펠레가 브라질에 첫 월드컵 우승의 영광을 안기면서 ‘브라질 시대’는 막이 올랐었다. 98프랑스 월드컵. 21세의 ‘축구천재’ 호나우두를 위한 화려한 무대가 준비되고 있다. 온 세계가 ‘펠레의 후예’인 그의 환상적인 ‘볼의 예술’을 보고자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40년을 넘나들며 세계축구의 영웅으로 떠오른 이들 브라질 출신 두 ‘축구 스타’의 족적은 묘하게 일치하고 있다. 13일 같은날 두사람은‘축구’의 이름으로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올 57세의 브라질 체육부장관 펠레. 국제축구연맹(FIFA)의 ‘챔피언 전당’에 최초로 이름을 올렸다. 보비 찰튼(영국) 베켄바워(독일) 크루이프(네덜란드) 에우세비오(포르투갈) 플라티니(프랑스) 등과 함께…. 호나우두도 이날 아주 특별한 상을 받았다. 각국 축구감독이 투표를 통해 선정되는 최고의 영예인 FIFA선정 ‘올해의 선수’상. 91년 이 상이 제정된 이후 수상한 스타는 로타르 마테우스(독일) 마르코 반 바스텐(네덜란드) 로베르토 바조(이탈리아) 호마리우(브라질) 조지 웨아(라이베리아)와 호나우두 등 6명. 이들 중 2회연속 수상은 호나우두 혼자 뿐이었다. ‘호나우두 루이스 나자리오 다 리마’라는 긴 이름의 그가 명실공히 ‘세계축구의 대명사’로 자리잡는 순간이었다. 호나우두는 펠레처럼 17세때 94월드컵 브라질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러나 호마리우, 베베토 등 쟁쟁한 선배들의 그늘에 가려 출전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때 그가 눈을 돌린 것은 유럽무대. 그는 95∼96시즌 네덜란드 아인트호벤으로 이적, 유럽에서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고 그해 네덜란드리그 13경기에서 12골을 기록했다. 그의 몸값은 자그마치 2천만달러.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그의 몸값은 지난해 7월 이탈리아 인터밀란으로 이적하면서는 5천5백만달러로 뛰었다. 몸값에 걸맞게 97∼98시즌 현재 13골. 득점랭킹 1위로 팀의 정상질주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누구보다 빨리 달린다. 그리고 골을 터뜨린다. 더이상 그라운드에서 그를 막을 수는 없다.” ‘축구 영웅’ 베켄바워의 말은 호나우두의 진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올 프랑스월드컵. 세계 30억 축구팬들은 월드컵을 기다리는 조바심만큼이나 호나우두의 환상적인 플레이를 보고자하는 염원 또한 간절하다. 〈이재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