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임시국회를 사흘 앞둔 12일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은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 여야3당 총무들을 국회 귀빈식당으로 초청, 저녁을 함께 했다. 여야가 함께 자리했지만 김차기대통령의 시선은 주로 야당 국회 지도부에 맞춰졌다. 김차기대통령은 이자리에서 “여야가 적어도 1년간은 총 단합해 새정부를 도와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또 “원내 다수당인 한나라당에 특별히 부탁드린다”는 간곡한 ‘청탁’도 잊지 않았다. 만찬에 참석한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김차기대통령도 여소야대 국회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그게 아니라면 이런 자리까지 마련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여소야대 정국은 국제통화기금(IMF)난국극복을 위해 ‘특단의 카드’ 를 준비해야 할 김차기대통령으로서는 부담스러운 현실임에 분명하다. 국회 과반수 이상을 확보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경우 김차기대통령의 난국타개 처방은 약효가 떨어질 것이다. 여소야대의 뒤바뀐 풍경은 지난해 말 금융개혁법안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에서도 나타났다. 김차기대통령은 당시 재경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금융감독위의 관할권을 재정경제원에 두자는 여야 합의사항에 강한 불만을 표시, 국민회의측에 금감위를 총리실 산하에 두도록 긴급 지시했다. 한나라당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약속 파기’라며 국민회의측을 세차게 몰아붙였다. 김차기대통령을 향해서는 “당선했다고 국회를 우습게 알아도 되느냐”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국민회의 심사소위위원들과 박상천(朴相千)총무는 토라진 한나라당을 설득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임시국회 소집을 위한 5일 3당총무회담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재현됐다. 김차기대통령이 1월 임시국회에서 금융기관 정리해고제를 도입하라는 지시를 내린데 대해 한나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특히 비상경제대책위가 임시국회 소집일을 12일로 못박자 한나라당은 ‘월권행위’라며 발끈했다. 박총무의 설득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불씨는 언제 되살아날지 모른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국난극복을 위해서는 김차기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와 IMF의 ‘채찍’때문에 한나라당으로부터 대승적 차원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었다. 한나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는 지양하겠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김차기대통령의 여소야대국회 관리방식은 명분을 선점한 뒤 여론의 힘으로 야당을 설득하는 ‘여론정치’전형으로 볼 수 있다. 이때문에 야당도 명분과 여론의 압력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형식이었다. 문제는 여야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릴 경우다. 특히 올해는 총리 및 장관 인준이나 인사청문회 도입, 경제파탄 청문회 개최, 지방선거 실시 등 여느해보다 더 가파른 정국이 예고되고 있다. 여야의 밀월관계가 끝나고 본격적인 대치정국이 도래할 경우 정국은 권력을 쥔 소수여당과 국회를 장악한 다수야당의 힘겨루기로 파행을 거듭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김차기대통령은 정국주도권 장악을 위해 원내다수당인 야당이 통과시킨 법률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김차기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한나라당이 법안을 재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재적과반수의 3분의2가 필요하다. 사실상 통과가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지만 야권의 반발지수가 높아질 것이 뻔하고 그 부담은 갈 길이 바쁜 김차기대통령과 여권이 질 수밖에 없다. 이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시도하지는 않겠다”고 공언한 김차기대통령과 여권의 입장에 변화가 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국정운영의 양 주체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진다. 국민회의측은 정국주도권 장악을 위해, 자민련은 내각제 개헌의 동조세력 확산을 위해 정계개편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선직후인 지난달 23일 동아일보가 국회의원 1백7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64%인 1백7명이 소폭 또는 대폭의 정계개편 가능성을 점쳤다. 특히 한나라당내 내각제 선호세력과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연합공천으로 16대 총선을 불안스럽게 보고 있는 수도권 지역 의원들의 동요가 정계개편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김차기대통령은 다수야당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카드를 내보이고 있다. 우선 거국내각을 구성, 야당에도 국정의 일정지분을 할애한다는 방침을 세워 놓고 있다. 노사정(勞使政)협의체나 정부조직개편위 구성과정에서도 야당에 자리를 내주었다. 김차기대통령의 또하나의 대야(對野)카드는 ‘경제파탄 책임론’이 될 것 같다. 그는 14일 국민회의 당무회의에서 “누란에 처한 국사에서 야당이 책임질 일이 많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경제파탄의 상당부분이 현 야당에 있는 만큼 국정운영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경고성 발언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차기대통령의 이같은 ‘야당 길들이기’가 여소야대라는 근본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윤영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