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목발을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하루에 열두번도 더 느꼈다. TV를 통해 월드컵예선 경기를 지켜봤다. 숱한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불안감도 엄습해 왔다. “이러다 영원히 낙오하는 것은 아닌가.” 윤정환(25·부천SK). 그는 지난해 부상의 ‘암울한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했다. 발목 부상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해야 했다. 부상의 공포로 ‘게으른 문제아’로 찍히기도 했다. 더는 탈출구가 안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는 법. 지난 5일 차범근감독의 부름으로 그는 다시 일어섰다. 월드컵축구대표팀이 연일 강행군을 하고 있는 울산전지훈련장. 지난해 5월 고질적인 발목부상을 떨쳐내고자 수술을 했던 그는 지금 새털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강훈을 견뎌내고 있다. 다른 선수들의 부상이 끊이지 않는 요즘 가벼운 부상 한번 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부상자가 나왔다 하면 바로 그였다. 차감독의 입가에 미소가 가시질 않는다. 차감독은 그에게 칭찬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위사람들에게 윤정환의 부활이 대표팀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한다. 사실 차감독은 월드컵 최종예선 기간 내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팀내에 탁월한 게임메이커가 없었고 미드필드의 약점이 계속 드러났던 것. 차감독의 가슴 한구석엔 언제나 윤정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윤정환은 96년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경기 9게임 전경기에 출장하며 2골 8도움이란 수훈을 세웠다. 특히 8경기에서 공격포인트를 기록, 기복없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미워도 다시 한번.’ 차감독은 윤정환을 불렀다. ‘비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 윤정환은 온몸에 흐르는 땀으로 화답하고 있다. 이제 더이상 ‘만년 부상선수’나 ‘골칫덩이’가 아니다. 윤정환의 부활로 차감독의 작전구상도 바뀌었다. 수비위주의 플레이를 탈피, 25일부터 방콕에서 열리는 킹스컵대회에서 3―5―2의 공격적인 포메이션을 시험하기로 했다. 윤정환은 “대표팀에서 중도하차했던 것이 큰 자극제가 됐다”며 “지난해 말 인천에서 강도높은 개인훈련으로 몸을 완전히 만든 만큼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다짐한다. 지난해 11월30일 결혼한 윤정환. 요즘 동갑내기 아내와 매일 전화통화를 하며 힘을 얻는다. 좀더 어른스러워진 그가 한국축구의 숙원인 월드컵 16강진출을 이끌어 주기를 팬은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배극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