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나라 경제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환란(換亂)’이니 ‘금융대란’이니 하는 용어가 난무하고 냉정한 외국투자자들의 눈치를 살피며 국가부도 위기를 하루하루 넘기고 있다. 당장의 사태가 위급하니 외국돈이라면 고리채라도 감지덕지하는 형편이다. 앞으로 이 위기를 벗어나더라도 원금은 물론 이자부담도 엄청날 전망이다. 결국 우리 상품을 수출하거나 무역외수지를 개선하는 방법을 통해 지속적으로 외화를 벌어들여야 난국을 근본적으로 탈출할 수 있다. ▼과학기술인 뼈 깎는 노력을▼ 그렇다고 최근 번창한다는 ‘때밀이관광’이나 과거 값싼 와이셔츠를 만들어 팔던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영원한 2류국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렵더라도 세계시장에서 인정받고 제값을 받는 한국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정책입안자들도 이 점을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정부예산을 삭감하면서도 과학기술예산만은 일단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보도가 있었고 지난주 과학기술인 신년하례회에 참석한 김대중차기대통령도 그 의지를 재확인했다. 특히 올해는 국가 총연구개발비의 80%를 차지하던 민간부문의 과학기술투자가 어려운 기업여건으로 크게 줄어들 것이 분명한 만큼 그동안 그나마 구축해 놓은 연구개발의 기반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과학기술투자는 더욱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과학기술인들도 연구개발사업의 효율화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것은 방만한 경영을 한 기업인과 금융인 그리고 정책을 실기(失機)한 정부에 1차적 책임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경쟁력있는 상품을 만들어내지 못한 과학기술자도 책임의 일단을 느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연구여건과 부족한 연구비 등 핑계를 댈 수 있는 여지는 많이 있지만 성과가 없으면 도태된다는 것이 이번 IMF사태로 드러난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다. 과연 우리가 그동안 약속한 것은 제대로 이루어냈는지, 학연이나 혈연 때문에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일은 없는지, 공연한 허장성세로 과학기술에서도 분수에 안 맞는 거품을 만든 일은 없는지 냉철히 반성해 볼 일이다. 세계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우수한 과학기술인력을 양성하지 못한 점도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이공계 대학교육이 뒤떨어진 이유는 물론 교육투자의 부족함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대학사회의 안이함과 이기주의가 이에 못지않은 걸림돌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입으로는 항상 ‘양보다는 질이 우선하는 교육’을 말하면서도 정부나 기업의 지원이 있으면 학생정원을 늘리고 건물을 짓는 식으로 양적 팽창에만 힘써오지 않았던가. 재벌의 실속없는 문어발식 경영을 비난하지만 대학의 끊임없는 학과분할과 허울뿐인 연구소의 난립은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그리고 경쟁없는 대학사회에 안주하면서 학생교육을 위한 자기계발보다는 ‘한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라는 기득권 보호를 위해 더 힘쓰지는 않았는가. ▼우수인력 양성 더욱 힘써야▼ IMF사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팽창주의와 거품을 과학기술계에서도 제거하는데 좋은 기회가 되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투명성 제고를 통해 허명(虛名)보다는 질과 실력으로 승부하는 풍토를 조성하는 일일 것이다.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제는 경제전문가들의 몫이지만 장기적인 경제위기 극복과 국가발전은 과학기술자들에게 달려 있다. 정책결정자들은 눈앞의 위기극복에 급급해 기술력 향상의 토양을 메마르게 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아야 하고 과학기술자들은 장기적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도록 효율적인 교육과 연구개발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오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