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처럼 보여야 한다. 드라마 제작 현장은 ‘진짜’와 허구를 짜깁기 하는 마당이다. 시청자들은 진짜처럼 정돈된 현실을 보지만 그 뒤꼍은 전혀 다르다. 이 때문에 TV 제작진과 연기자들은 리얼리티를 살리려 애쓴다. 13일 KBS1 설날특집극 ‘귀향―그 짧은 이야기’의 야외 녹화 현장. 설날이 보름이나 남았는데 분위기를 미리 내야 한다. 더욱이 약혼자(김주승)와 함께 온 딸(김청)을 반기는 잔치 장면이다. 시골집 하나를 빌렸다. 경기 화성군 팔탄면 노하2리의 박평현 이장댁. 돼지도 한 마리 잡았다. 잔치에 돼지가 빠질 수 없다. 마당에 멍석도 깔고 잔칫상도 차렸지만 어딘지 어색하다. 그래도 나중에 TV를 보면 그럴싸할 것이다. 브라운관의 마술. 박영주 PD는 마술을 지휘하는 마법사다. 그는 연기자의 위치나 조명까지 일일이 체크하며 ‘진짜 만들기’에 여념없다. 같은 장면도 서너 차례 반복한다. 잔칫상의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나중에 편집 과정에서 ‘조립’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거슬리는 티도 나중에 자르면 된다. TV에 나올 장면 하나. 박성미가 뭔가 따진다. 화면은 침튀기는 그의 얼굴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 옆에 있는 다른 탤런트는 하품하며 기지개를 켠다. 화면에 안 나오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28일 방영될 ‘귀향…’의 줄거리. 정애(김청)는 신용금고사 대리까지 승진한 억척 여성. 그러나 상사의 대출사기사건에 연루되어 귀향하다 두 형사에게 체포된다. 정애는 잡힐 때 잡혀가더라도 어머니(정혜선)를 잠깐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통사정하고 형사들은 받아들인다. 정애는 딸의 결혼을 고대하는 어머니 원을 풀어주고 싶다며 젊은 형사에게 약혼자 행세를 부탁한다. 거절해도 헛 일. 마을 사람들은 그 남자를 약혼자로 여기고 급기야 잔치까지 벌이는데…. 드라마 홍보용 사진을 찍으러 가는 길에 김청은 정혜선에게 “엄마! 이 잠바는 정말 오래된 것 같네요”한다. ‘엄마’가 자연스럽다. 촬영 현장에 있으면 드라마가 실제 삶처럼 생각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TV 너머는 진짜 현실. 쇠똥 냄새가 충만한 시골. 두어대의 외제차가 낯설다. 일부 탤런트가 타고온 자동차다.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다. 〈허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