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의 가정 위에는 특별한 공포가 드리워져 있다. 바로 ‘실업’이라는 공포. 실업, 그것은 시장경제 최대의 선물인 ‘풍요’에 덧붙은 대금청구서인 셈이다. 두 개의 사진. 53년 구직(求職)이란 쪽지를 달고 서울 명동거리에 서있는 무기력한 표정의 젊은이(임응식 작). 지난 9일 오전 관악산을 오르는 코트 차림의 40대 남자(본보 김철한기자)의 사진은 요즘 우리의 심정을 저리도록 잘 표현하고 있다. 남편이 출근(?)한 뒤 그의 아내는 “정리해고의 칼날이 우리 가정은 비켜가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국의 실업자가 작년말 57만명에서 올해 1백만∼1백3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실업은 ‘취업의 어려움’을 가리켰다. 그러나 이제는 ‘일상적인 해고 위협’을 뜻한다. 하루하루가 아슬아슬…. 살얼음판 같은 삶이다. “실업은 경제적으로 인간을 무력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긍심을 잃은 사회적 패배자를 양산하며 분노 무력감 동기상실 등 ‘사회적 질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로자베스 켄터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교수) 이런 우화도 있다. “엄마, 왜 우리집 난로엔 석탄이 없지? 너무 추워.” “아빠가 실직했기 때문이야.” “왜 직장을 잃어?” “일하시던 탄광이 문을 닫았거든.” “왜 문을 닫았어?” “응, 세상에 석탄이 너무 많이 남아돌거든.”(허버트 휴버만의 ‘인간의 세속적 재화’에서) 정리해고는 이미 처절한 구조개혁의 길로 들어선 한국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들에겐 너무나 생소한 생존환경이다. 이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성찰, 사회적 합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이 필요한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허승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