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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허진호/전자우편과 IMF시대

입력 | 1998-01-18 20:26:00


요즘 내가 받는 명함엔 거의 모두 전자우편(E메일) 주소가 적혀 있다. 미국 하이테크기업 비즈니스 담당자들도 대부분 명함에 전자우편 주소가 있다. 그들과 거래를 할 때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전자우편을 사용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다보니 나는 계약할 때 서명을 해서 보내는 것 외에는 팩스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자우편 주소가 있어도 실제 전자우편으로 상담을 하기 힘들다. 대개 상대방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얘기한다. 내가 메일을 보내면 상대방이 원하는 시간내에 응답을 줄 거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전자우편으로 일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지 않다. 컴퓨터를 잘 쓸 거라고 생각되는 컴퓨터회사 최고경영자에게 전자우편을 보내면 답장이 올까. 비서가 중간에서 전자우편 내용을 사장에게 전달할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으로 봐서 거의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세계 소프트웨어의 황제 빌 게이츠에게 전자우편을 보내면 답장이 온다. 나도 얼마전 미국에서 두번째 큰 통신업체인 MCI사의 데이터통신부문 총괄 부사장이며 ‘인터넷의 대부’라고 일컬어지는 빈튼 서프에게 몇번 전자우편을 보내고 답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3개월 전에 약속해도 일정을 잡기 어려울 만큼 바쁜 사람이다. 결국 인터넷시대에는 전자우편을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에 따라 비즈니스 성공여부가 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에서 의사소통을 하는 습관을 보면 한심하다. 기업 실무자들이 상담하는 경우 전자우편은 고사하고 전화상담도 드물 정도다. 전화로 되는 일도 많을 터인데 대부분 전화는 상대방과 약속하는데 사용하고 직접 만나서 해결한다. 이런 식의 비즈니스 미팅이 몇차례 반복된 후에야 작은 것이라도 결론이 내려진다. 전자우편을 사용하지 않는 데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일선 실무자들은 ‘전자우편이 전화나 미팅처럼 쉽지 않다’ ‘책상에 PC가 있긴 하지만 항상 전자우편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변명한다. 윗사람으로 올라가면 이러한 현상은 더 심해져 컴퓨터에 ‘알레르기’ 같은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많다. 그러니 원하는 상대방과 반드시 의사소통이 된다는 확신이 없다. 내가 전자우편을 보내도 그 사람이 본다는 확신이 없으니 결국 전화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전자우편을 통한 비즈니스는 정착되기 어려워진다. 전화로 할 수 있는 일조차 만나서 이야기하니 바쁘기는 무척 바쁘면서 실제 업무효율은 아주 낮다. 나는 이것이 요즘 자주 거론되는 사무직노동자, 소위 ‘화이트칼라 고비용 저효율 구조’의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소한 것이지만 습관을 바꿔 전자우편을 수용하는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시대를 극복하는 비즈니스맨의 자세가 아닐까. 허진호(아이네트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