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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委 10대의제 결정안팎]노동계 요구 거의 수용

입력 | 1998-01-19 20:58:00


노사정(勞使政)위원회는 19일 ‘고통분담 선언문’ 작성을 둘러싸고는 논란을 거듭했으나 앞으로 협상테이블에 올려질 의제를 결정하는데는 쉽게 합의했다. 이날 결정된 10대 과제 37개 항목은 앞으로 논의해야 할 사안일 뿐 구체적인 실천조치까지 합의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확실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노사정 대타협의 장정(長征)이 시작됐음을 뜻한다는 점에서 협상의 윤곽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37개 의제 항목 중 대부분은 노동계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됐다. 예를 들어 화급한 현안인 종합적인 실업대책 외에 △최저임금제 개선 △임금결정체계 개선 △공무원 교원의 노동기본권 보장문제 △노조정치활동 허용범위 확대 등이 포함된 것 등에는 특별한 의미부여가 가능하다. 우선 이들 항목은 그동안 노동계의 숙원이라고 할 만큼 끊임없이 요구해온 것이다. 또 이번 노사정 협의의 최대 쟁점은 고용조정(정리해고)의 법제화문제지만 노동자의 권익을 대폭 향상시키는 이들 항목이 의제로 대거 포함된 것은 한 가닥 대타협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18일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이 ‘국민과의 TV대화’에서 노조의 정치활동 자유와 정당을 만들 자유, 민주적인 노동운동 보장을 언급한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한마디로 앞으로의 협상에서 그동안 노동계가 요구해온 모든 것을 다 들어줄테니 정리해고제 도입 한가지만 수용하라는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노(勞)측은 “정리해고제를 수용하는 조건으로 이들 사항을 받아들이는 이른바 주고받기식의 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정부측이나 김차기대통령측은 이를 협상과정에서 유일한 돌파구로 여기는 분위기다. 국민대통합을 위한 조치로 구속근로자의 석방과 사면복권 문제가 포함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이 부분에 대해 새 정부가 확고한 의지를 보일 경우 노동계의 불신감을 불식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나 협상의 최대 고비는 역시 고용조정에 관한 법제 정비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고용조정 법제화문제가 의제로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자 당장 일선 사업장에서 “노동단체 지도부가 고용조정을 수용한 것 아니냐”는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며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이같은 노동계의 어려운 사정을 감안한 듯 정부측도 이 부분에 관한 한 매우 신중한 태도다. 김차기대통령측 위원인 조성준(趙誠俊)간사위원은 이날 10대 의제 결정사실을 발표하면서도 “특히 고용조정문제가 의제에 포함된 것이 합의가 된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달라”며 거듭 당부했다. 김차기대통령측은 특히 노사정이 진통을 겪은 ‘노사정 고통분담 선언문’을 매우 중요시한다. 김차기대통령측은 당장 해외자본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미국 뉴욕의 월가(街)를 방문 중인 ‘해외투자유치사절단’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고용조정 법제화’를 포함한 선언문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다. 사실상 월가의 투자자들을 겨냥한 정치적 성격의 합의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노사정 3자 모두 충분히 인정한다는 태도다. 또 앞으로의 노사정 3자 협상의 기본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고통분담 선언문의 내용은 매우 중요한 관건임에 틀림없다. 〈김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