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출근길 시내버스에서 겪은 일이다. 운전사가 삐삐(무선호출기)를 받더니 버스를 급히 길가 공중전화대 옆에 세웠다. 엔진을 끄고 “전화 좀 합시다” 한마디만 던지고는 차에서 뛰어내렸다. 30여명의 승객은 모두 오른쪽 차창으로 몰려 운전사의 하는 양을 지켜봤다. “급한 사정이 생긴 모양이야”“버스에 이상이 있다고 연락이 온건지도 몰라” “집에 어떤 변고가 생겼을 수도 있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면서 근심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어이없는 일이 이어졌다. 운전사는 연방 웃어가며 통화했다. 사적인 통화인 게 분명했다. 버스를 길가에 세운 것도, 많은 승객이 눈이 빠지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도 잊은 것처럼 보였다. 어느새 차안에 냉기가 돌았다. 이곳저곳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무슨 짓이야. 아무 설명도 없이….” “엔진은 왜 꺼. 너무 춥잖아.” 그러거나 말거나 운전사는 근 10분 가량 전화를 하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사과 한마디도 없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조금 전까지 화를 냈던 승객들중 누구 하나도 운전사에게 항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버스가 출발한 것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지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이 버스안 세태(世態)는 얼마전까지의 우리나라를 닮았다.그 운전사는 공용버스를 운행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승객(공동체 구성원)의 입장을 헤아릴 줄 몰랐고 주어진 직분을 망각했다. 또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제대로 생각하지도 않았다.승객을 불편없이 목적지까지 모셔야 하는 의무에 소홀했고 그러지 못할 경우 충분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데도 그런 절차를 무시했다. 승객들은 자기의 권리 주장에 약했다. 규정을 무시하고 멋대로 나가는 운전사의 잘못을 지적하지 못했다. 바쁜 출근길에 많은 사람의 시간(재산이나 마찬가지다)을 빼앗으며 딴짓을 하는 것을 뒷전에서만 불평했지 내놓고 항의하지 않았다. 요금(세금이나 마찬가지다)을 내고 버스에 탔으면 주인인데도 제대로 주인행세를 못했고 운전사의 눈치만 살폈다. 승객을 어떻게 보았으면 그런 오만과 독선을 부릴 수 있는지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착해서인가, 아니면 권리에 무심한 것인가. 이틀 전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은 ‘국민과의 TV대화’를 통해 지금 나라가 처한 경제위기의 실상을 설명했다. “금고 열쇠를 받아 열어보니 돈은 한푼도 없고 빚문서만 쌓여 있더라” “빚을 내 빚을 갚는 것이 아니라 이자부터 갚아야 하는 것이 우리 경제의 현주소다.” 가슴에 피멍이 맺히는 얘기들이다. 4천5백만이 승선한 ‘잘 나가던’ 한국호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변변히 된 설명조차 않고 넘어온 위정자들에게 새삼스레 분노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TV대화가 끝난 뒤 시청자들은 대부분 “국가위기상황을 비교적 솔직히 알리면서 고통분담 동참을 호소해 설득력이 있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불과 2시간 동안 나라가 거덜나 버린 모습의 일단만 설명했을 뿐인데도 국민은 이 새로운 시도에 흡족해하는 모습이었다. 국가경영을 새로 맡게 될 국민의 공복(公僕)이 주인인 국민 앞에 현실을 소상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은 사실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런 당연한 과정에 목말라 있었다. 민주주의라고 무오류(無誤謬)를 담보하는 건 아니다.실패도 실수도 있을 수 있다. 다만 지도자가 그것을 빨리 시인하고 중지를 모아 해결책을 찾아나감으로써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정부는 못한 그 일을 지금 새 정부는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잘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국민도 내놓고 싫은 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고통은 받게 된 것, 운전사 앞에서 주눅드는 승객은 되지말자. 민병욱(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