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 일산구 식사동은 일산가구공단과 함께 고양시의 가구산업을 떠맡는 한 축인 고양가구공단이 들어서 있는 곳. 이 동네 지명은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과 관련된 전설에서 유래됐다. 공양왕이 조선 태조 이성계(李成桂)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칼날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던 중 지금의 식사동 부근에 이르렀다. 날이 저문데다 굶주리고 지쳐 있던 공양왕 일행은 절을 발견하고 하룻밤 재워줄 것을 부탁했으나 이미 왕조가 바뀐 상태. 주지는 왕을 절안에 들이지 못하고 10리가량 떨어진 누각으로 안내한 뒤 매일 수라를 올렸다. 이후 이 곳은 공양왕이 절(寺)에서 날라다 준 밥(食)을 먹은 곳이라는 뜻의 식사리로 불렸다는 것이 전설의 내용. 왕이 잔 곳이라는 뜻의 어침(御寢)을 비롯, 대궐고개 왕릉골 등 공양왕과 관련된 지명이 함께 남아 있다. 절도 누각도 다 사라진 그 자리에 77년부터 17가구의 음성나환자들이 들어와 가구공장을 연 뒤 지금은 회원업체가 3백50여개에 이르는 가구공단으로 성장했다. 가구공단 뒤쪽의 영심이 오룡동 저현 동거리 견달마을 등 5개 자연촌락은 일산신도시개발 과정에서 뒷전에 밀려난 식사동 원주민들의 터전이다. 고양군 식사리에서 92년 고양시 식사동, 96년 일산구 식사동으로 변했으며 97년 말 현재 인구는 4천6백24명.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를 겪었던 일산신도시지역과는 달리 마을전체가 정체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고양〓선대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