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문제에 있어 가장 절실한데도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가 군비통제이다. 실상 남북간에 군비통제가 논의된다면 대화 교류협력 신뢰구축 등의 단계를 이미 뛰어 넘어 평화공존과 통일을 가시권에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비통제는 남북 적대관계의 청산을 의미하며 군비제한과 군비축소로 이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군비통제를 남북문제의 뒷 순위로 밀어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한반도 긴장완화의 핵심요소인데다 남북문제를 단계별로만 논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과중한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군비문제는 외환금융위기에 직면한 한국이나 심각한 경제난으로 체제위기를 겪고 있는 북한 모두에게 오히려 적극적인 논의 필요성을 더해 주고 있다. 지난해 남북한의 국방비를 보면 국가자원 배분의 왜곡현상은 심각하다. 한국은 13조7천여억원으로 국민총생산(GNP)의 3.2%, 정부 총예산의 20.4%를 국방비로 배정했으며 외자소요는 국방부와 방산업체를 합쳐 50억달러였다. 북한은 지난해 GNP(2백10억달러)의 24.8%에 이르는 52억달러를 군사비로 쏟아부었다. 지난해 12월 첫 본회담을 가진 4자회담은 앞으로 군비통제 논의의 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정전협정 대체문제 등을 협의하면서 당장 비무장지대(DMZ) 긴장완화를 모색하기 위한 군사분야의 논의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북간에 군비통제를 다룬 과거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남북은 92년말 남북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를 통해 △남북 직통전화 개설 △부대이동과 군사연습의 사전통보 △DMZ의 평화적 이용 △군인사 교류 △군사정보 교환 등 5대 신뢰구축조치와 군사공동위 설치에 합의했었다. 북한에서 김정일(金正日)의 권력승계와 한국의 새정권 출범으로 94년 무산됐던 남북정상회담이 실현될 경우 군비통제 논의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군비통제 논의는 남북협상에 앞서 국제군축협약에 따른 국외 협상트랙이 먼저 작용할 수도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현재 북미간의 미사일협상 등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남북한은 96년6월 제네바 군축회의(CD)에 동시가입, 국제군축협약 이행의 부담을 지고 있다. 북한이 아직 가입하지않은 △화학무기금지협약(CWC)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특정 재래식무기 금지협약(CCW) 등이 모두 CD의 논의사항이다. 극적으로 남북이 군비통제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이의 실현을 위한 사찰수단도 문제이다. 제네바 핵합의 이후에도 국제사찰을 극도로 꺼리는 북한을 상대로 현지사찰을 한다는 것은 현단계에서는 요원하다고 할 수 있다. 〈황유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