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의 승리는 한국정치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한마디로 제2의 건국이다. 제1의 건국은 48년이고 50년만의 제2의 건국인 셈이다. 제1의 건국 때 국시는 민주주의였지만 실제는 안보가 목적이었다. 결과는 경제파탄이었다. 이제부터는 경제와 민주주의, 안보와 민주주의가 함께 발전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박정희(朴正熙)전대통령은 어떻게 평가하나. “박대통령이 경제발전을 지향한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었고 성과도 올렸다. 박정권은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의욕과 자신감을 주었다. 하지만 그밖에는 문제가 많았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빈부격차, 도농(都農)격차,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격차,지역간 격차는 늘어만 갔다.” ―아시아의 지도자 가운데는 아시아형(型)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민주주의 제도를 만든 것은 서방이지만 민주주의 철학이나 전통은 아시아에도 있었다. 따라서 서구에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서양에도 동양에도 민주주의 없이 성공한 나라는 없다.” ―심각한 경제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생각인가. “한국은 민주주의가 없었기 때문에 정경유착이 일어났다. 문제는 외채상환의 압력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잘못하면 모라토리엄(국가채무지불유예사태)의 가능성도 남아 있다. 무엇보다도 수출과 투자의 확대가 필요하다. 최대 과제는 얼마만큼 외국투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은 작년 6%였으나 금년에는 2% 달성도 어려운 형편이다. 올 1년은 물가인상 기업도산 등 여러 문제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내년 이후에는 어느 정도 경제도 성장하고 나라도 안정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남북관계는 어떻게 전망하나. “지금은 통일이 아니라 평화와 공존을 정착시킬 단계라고 생각한다. 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지만 김영삼(金泳三)정권에서 중단됐다. 나는 이 문서를 한번 더 되살리고자 한다. 북한은 무력투쟁을 꾀해서는 안된다. 북한이 무력투쟁을 꾀하면 결단코 용서하지 않겠다. 지금까지 한국정부는 때때로 북한정권을 전복시켜 흡수합병을 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나는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대만처럼 쌍방이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교류를 확대하는 일이 중요하다. 정치적인 일괄타결이 경제협력처럼 가능한 분야부터 해나가는 것이다. 공식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민간이 하면 충분하다.” ―한국측에서 주도적인 조치를 취할 용의는…. “당선된 날 밝혔듯이 남북간의 대화를 재개하고 싶다. 필요하다면 정상회담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으나 아직 북한측으로부터 반응이 없다.”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은 사라졌다고 보는가. “없어졌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어느 정도는 있다고 본다.” ―한일관계의 현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유감스럽지만 잘돼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특히 문제점이 있다면…. “양국관계는 일본측에서 보면 종전(終戰)이 끝나지 않은 상태이며 한국쪽에서 보면 전후(戰後)가 시작되지 않은 상태다. 한국에서는 여러해가 지났지만 일본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다. 일본은 전후 상당한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그에 따른 과거인식은 매우 부족하다. 일본은 평화헌법을 갖고 있으며 비핵3원칙이 있다. 개도국에 대한 원조액은 세계에서 가장 많다. 그러나 양국에는 불행한 과거가 있다. 이를 확실히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한국내에서 일본의 대중문화수입에 반대하는 여론이 있지만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 문화 쇄국주의처럼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없다.” ―한일관계를 진전시킬 방안은…. “일본이 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하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50년만에 처음으로 생긴 민주정부에 대해 그런 모욕적인 일을 할 만큼 절박한 이유가 있다면 납득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일본의 문제는 이웃나라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지금 세계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만큼 그 영향력이 보다 좋은 방향으로 발휘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에 취임하면 일본과의 관계를 정말로 개선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나 그 직전에 이런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장차 일왕(日王)이 방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악영향을 초래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동북아시아의 지역협력이나 집단안보를 위해 한일이 역할을 분담할 가능성은 있나. “있다. 남북한 일본 미국 중국 러시아 등 6개국, 몽골까지 포함하면 7개국이 유럽안보회의 같은 ‘아시아형’의 무엇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 몇년전부터 생각해 왔다. 이는 미국과 중국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 안정을 촉진시키고 상호이해 증대, 문화 경제화합도 가능할 것이다.” ―자민련 김종필명예총재와 공동정권을 약속했는데…. “헌법대로 하면 된다. 헌법에 따라 총리의 권한을 최대한 존중하겠다.” ―내각제 도입은…. “(국민회의 자민련) 양측의 협력으로 가능할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일본인이나 한국인이나 ‘우물안의 개구리’인 점이 문제다. 세계나 이웃나라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일본기업이 한국에 투자를 하면 한국인은 불만스러워한다. 그러나 한국기업이 외국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반응이 없다. 외국에 대한 마음이 열려 있지 않고 ‘세계인’이라는 인식이 한국인과 일본인에게는 부족하다. 일본의 일방적인 어업협정 파기도 이런 측면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 〈정리〓이동관·김재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