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는 교회일 보러 나갔고 큰놈 작은놈 모두 전화 한통씩 하더니 뛰쳐 나갔다. 일주일 전 은행에서 밀려난 송차장. 사흘동안 빈둥거리니 진저리가 난다. 일간신문 ‘오늘의 경기’안내까지 읽고나니 더 읽을 게 없다. 슬리퍼를 끌고 편의점 앞에 가 벼룩신문을 집어 봐도 끌리는 게 없다. 큰놈이 지금 중2라던가, 중3이라던가. 이 정도로 은행일에 미쳐 15년을 지냈다. 윤부장은 눈코 뜰 새 없다. 아침 9시반 기원에서 온 전화. “아직 안나오고 뭐하냐.” 처음 만난 동네아저씨한테 어제 몇 수 가르쳤더니 소주를 사고 오늘은 두어판 두고 점심 사겠다고. 오후에는 수요일마다 스케이트를 가르쳐 주기로 한 동네 꼬마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 내일은 부흥회 준비하는 목사님 일 도와드리고 하루를 잡아서 책들을 종류별로 정리해야 한다. 주말에는 “이젠 좀 함께 시간을 보내는가 했더니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보기 힘들다”고 불평하는 마누라하고 양수리쯤 가서 아무도 안 밟은 눈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20년을 회사에 근무하면서도 바둑실력 1급, 스포츠 다섯가지 즐기기, 50세 전에 장로되기, 책 2권 이상 발간, 수출회사를 설립해 사장되기 등 인생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고 살아온 윤부장은 스물네시간이 온통 자기 것이 됐는데도 하루가 짧다. 신체 정신 가정 지식 사회 재정. 인생의 6대 분야에서 목표를 갖고 사는 게 나를 위해 성공적으로 사는 것이다. 김원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