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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어령/벤처기업정신이 한국을 구한다

입력 | 1998-01-25 20:29:00


이 지구에는 1억1천만개가 넘는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고 한다. 신(神)은 이 땅에 귀중한 다이아몬드나 금을 묻어 주었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바로 저 자신을 죽이는 지뢰를 매설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분쟁이 가셔 평화가 찾아와도 어두운 지하에 묻혀 있는 지뢰의 증오와 분노만은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 지구의 도처에서 그 폭발로 억울하게 희생되는 사람들이 연일 수십명을 헤아린다. ▼ 日 「지오서치」社의 교훈 ▼ 더구나 아무것도 모르고 놀고 있던 아이들이 그 지뢰사고로 손발이 끊기고 목숨을 잃는 수가 많다니 더욱더 가슴이 저리다. 다이애나비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슬퍼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녀가 바로 이 지뢰제거의 비정부기구(NGO) 운동에 앞장섰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운동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는지는 지뢰금지국제캠페인(ICBL)이 9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지뢰를 처리하는데 찬성하는 사람들도 한국만은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들을 한다. 아직도 남북이 대치해 있는 상태에서는 지뢰를 섣불리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국을 다녀간 미 국방장관도 그런 말을 남기고 갔다. 이 말을 뒤집으면 우리는 아직도 지뢰를 필요로 하는 세계의 유일한 예외지대에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그만한 이유로 지뢰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에는 이 지뢰 때문에 떼돈을 벌어들이는 벤처기업이 있다. 불과 2백㎞의 바다 건너에 이렇게도 다른 나라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무거워진다. 지금 세계에 묻혀 있는 지뢰를 제거하려면 지하를 탐지하는 특수장비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금속탐지기만으로는 그 수(數)도 그 기능도 미치지 못한다. 여러 명이 온종일 걸려 매설된 지뢰를 조사할 수 있는 범위는 겨우 3㎡ 밖에는 안된다고 한다. 보통 금속탐지기는 지뢰만이 아니라 헌 못같은 것에도 반응을 하게 되고 또 플라스틱 지뢰 앞에서는 숫제 눈먼 소경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자파를 활용하여 새로운 지중탐사 방식을 개발한 일본의 ‘지오서치’라는 벤처기업이 갑자기 부상하게 된 것이다. 석유탐사회사가 불황으로 해산하게 되어 실직한 근로자 중 한 사람이 일으킨 이 벤처기업은 대선배인 에인절(개인투자자)을 만나 전자파를 이용해 도로 함몰을 미리 찾아내는 특수기술을 개발했다. 그리고 그 전자파의 기술을 이번에는 지뢰를 찾는데 이용하여 경영이익이 1년 동안 4배로 증가하는 실적을 올렸다. ‘지오서치’라는 회사 입장에서 보면 인명을 앗아가는 불행한 마(魔)의 지뢰가 바로 황금이었던 것이다. 돈만 버는 것이 아니라 볼런티어(Volunteer)와 다름없는 보람과 명예를 한데 모으면서 성장해가는 것이다. ‘지오서치’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회사가 망해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는 벤처비즈니스의 희망이다. 둘째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자연히 돈이 따라붙는 개인투자자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지뢰를 「황금」으로 바꿔 ▼ 셋째는 기술만이 아니라 기술을 활용하는 시대감각이다. 늘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같은 지퍼 기술을 구두에 이용한 사람은 망하고 양복에 단 사람은 흥했다는 그 삽화를 잊어서는 안된다. 마지막으로는 NGO에 대한 주목이다. 국가 정부에 의존하는 기업은 정경유착으로 늘 규탄의 대상이 되지만 NGO와 협력하는 기업은 돈과 함께 사회로부터 칭찬을 받는다. 보람과 돈이 공존한다는 얘기다. ‘지오서치’의 벤처기업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살아갈 길이 무엇인지를 암시한다. 지뢰까지도 황금으로 만드는 마법의 힘, 그것이 바로 벤처기업의 정신이요 그 방법인 것이다. 금반지를 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숭고한 정신 위에 벤처기업의 정신을 덧붙이는 두뇌와 용기가 지금 절실하게 요망된다. 이어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