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주씨
“미쳤군.” 그들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으레 “미친게 분명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사실 그렇다. 돈 한푼 안생기는 일. 보기에 따라서는 전혀 생산적이지도 못한 일에 그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생을 바치고 있기 때문. ‘동대문구장의 야구도사’ 최기주씨(57)와 배구장의 ‘볼펜아저씨’ 정민교씨(41). 그들은 야구와 배구 기록에 ‘미친 사람들’이다. 서울운동장 시절부터 37년간 아마야구를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기록해오고 있는 최기주씨와 76년부터 8천번 정도의 배구 경기를 기록한 정민교씨. 이들은 “어릴 때부터 뭔가를 기록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고 특히 야구와 배구를 좋아하다보니 경기장에서 기록하는 일이 인생의 유일한 낙이 됐다”고 밝힌다. 두사람은 나이차가 16년이나 되지만 닮은 점이 너무 많다. 독신이라는 것. 중학교 졸업의 짧은 학력에도 불구하고 기록에 관한한 탁월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 이들은 비시즌기에는 이런저런 잡일로 숙식을 해결하다가 약간의 돈이 생기면 경기장에 눌러 앉아 기록에만 매달린다. 최씨는 숙소가 동대문야구장 근처에 있는 음식점 ‘희정’. 선린상고 야구선수 출신인 모인서씨가 운영하는 이 음식점에서 숙식을 하면서 청소일 등 노동으로 푼돈을 벌지만 야구 시즌이 되면 하루종일 경기장에서 산다. 고향이 경남 고성군 동해면인 정씨. 그는 여름에는 멸치잡이를 하면서 ‘출장비’를 모았다가 배구슈퍼리그를 비롯해 실업연맹전 종별선수권 전국체전 등이 열리면 경기장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기록에만 매달린다. 수많은 경기를 관전한 이들은 전문가의 경지를 넘어서 야구와 배구의 ‘도사’. 최씨는 “백인천씨가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위해 호적을 43년생으로 늦췄다”는 것 등 30년전의 일부터 요즘 중학교 선수들의 신상명세까지 손바닥 보듯 훤하게 알고 있는 것은 물론 타구만 봐도 어느쪽에 떨어질 것인지 정확히 알 정도의 ‘야구 도사’. 8가지 색깔의 볼펜을 들고 배구의 득점 득권과 서브에이스, 토스 등의 공식 기록과 함께 서브의 종류와 페인트 공격 여부까지 모두 알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한 배구 기록을 개발한 정씨 역시 ‘볼펜 아저씨’라는 별명과 함께 배구의 ‘살아있는 역사책’으로 불린다. 다른 욕심은 전혀 없는 이들이지만 기록에 관한한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최씨는 “배구장의 ‘볼펜’을 잘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정확하고 과학적인 면에서 배구는 야구기록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말했고 정씨는 “야구기록을 아무리 잘해도 한꺼번에 10개 이상을 챙겨야 하는 배구기록은 할 엄두도 못낼 것”이라고 코방귀를 뀐다. 〈권순일·장환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