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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되돌아본 8개월]연쇄부도 「기아사태」로 절정

입력 | 1998-01-26 07:40:00


한국은행이 청와대와 재정경제원에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의 차입 등 비상대책강구를 처음 건의한 지난해 3월26일은 ‘한국주식회사’전체가 ‘한보태풍’으로 비틀거리던 때였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차남 현철(賢哲)씨의 국정개입의혹과 야당이 제기한 ‘한보자금 6백억원 수수설’로 정쟁(政爭)의 복판에 있었다. 경제상황도 심각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2월말 현재 무역적자는 55억달러로 연간 억제목표의 40%에 육박했고 외환보유고도 2백98억달러로 20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우성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삼미특수강이 부도 처리되는 등 대기업들의 ‘부도(不渡)도미노’현상이 본격 시작됐다. 그후 5월 들어 태국의 금융위기가 터졌고 7월에는 그 영향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인접국가로 확산됐다. 기아그룹의 15개 계열사가 부도유예협약 대상업체로 지정된 것도 7월이었다. 한은이 해외차입독려를 집중건의한 8월 이후는 기아부도사태로 온나라가 몸살을 앓았다. 기아그룹과 채권단이 김선홍(金善弘)회장의 경영권포기를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는 동안 기아관련 중소협력업체들은 연쇄부도에 빠졌다. 정치권은 ‘병역공방’과 ‘색깔론공방’을 둘러싸고 격돌했다. 9월 들어서는 두 전직대통령의 사면과 당헌당규개정문제 등을 둘러싸고 김대통령과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후보간에 균열이 시작됐다. 외환보유고는 한달동안 25억3천만달러가 줄어들고 주가하락, 환율상승이 이어졌다. 한은이 여섯 차례의 외환관련보고를 올린 10월 여야는 ‘DJ(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총재)비자금사건’으로 정면충돌했다. 10월21일 검찰이 수사유보 결정을 내리자 이회창후보는 김대통령의 탈당을 요구, 여권내 갈등이 증폭됐다. 금융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은이 외환을 방출하는 바람에 외환보유고는 2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고 10월24일에는 종합주가지수 500선이 무너졌다. 10월23일 기아자동차의 법정관리방침이 최종결정됐으나 10월24일 홍콩의 증시붕락과 금리폭등으로 외국은행과 투자자들의 자금유출이 가속화했다. 비슷한 시기에 대만통화도 크게 평가절하됐다. 11월 들어 ‘국민신당 지원의혹’이 겹쳐 곤경에 몰리자 김대통령은 마침내 7일 신한국당을 탈당했다. 이날 김대통령은 김인호(金仁浩)경제수석에게 IMF에 대한 긴급금융지원 요청을 검토토록 지시했다. 〈이동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