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스위스 다보스에서는 이른바 98년 세계경제정상회의가 개막된 지 1월30일로 이틀째다. 이 회의의 당초 주제는 온 세계가 21세기에 해결해야 할 우선과제를 검토하는 것이었으나, 지금까지 계속된 많은 회의에서는 주로 아시아의 금융위기에 관심이 모아졌다. ▼ 낙관적 전망 너무 성급 이 과정에서 한국이 주된 논의대상이 된 것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고 있는 나라 중에서 한국은 경제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비해 국제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금융위기와 관련하여 이 회의에 참가한 세계 각국의 경제전문가들은 대체적으로 낙관적인 견해를 표명하였다. 그 이유는 크게 말해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1월28일뉴욕에서타결된외채 협상이 대체로 좋은 결과로 타결됐다는 점이다. 단기채를 중장기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추가로 지불해야 할 금리가 리보(런던은행간금리) 플러스 2.25% 내지 2.75%가 된 것은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고, 만기 2년채 이상의 경우 조기상환이 가능하게 된 것도 대체로 잘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한국의 경우는 일부 동남아국가와는 달리 마침 근본적 구조개혁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개혁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권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많은 다보스회의 참가자들은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의 개혁의지와 당선 이후 지금까지 보여준 정치적 역량에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과연 앞으로 금융위기에 대해 낙관해도 좋은지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첫째, 뉴욕협상이 잘 마무리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거기에 지나친 뜻을 부여해서는 안된다. 뉴욕협상이 갖는 의의는 우리가 금융위기를 해결하는데 다소의 시간을 벌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우리는 앞으로 이와 같은막대한외화자금을확보하려면 먼저 반드시 조치해야 할 입법사항들이 너무나 많다. 예컨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해 정리해고제가 곧 도입돼야 하고, 외화자금을 국내에 많이 도입하려면 현재의 외환관리법을 폐지해야 한다. 이에더하여자본의잠식으로 쓰러져 가고 있는 기업을 회생시키려면 이른바 외국투자가에 의한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도 가능토록하는 입법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기업의 경영을 보다 더 건실하게 하려면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집단소송제와 같은 법적 제도도 지체없이 도입해야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입법조치에 대해 국민적 합의는커녕 진지한 토의도 아직 전개되지 않은 상태이다. 셋째, 모든 개혁이란 논의단계보다도 추진단계가 더 어렵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논의단계에서는 개혁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계층이나 집단이 크게 반발하지 않지만 실질적 추진단계에 이르면 대단한 저항을 보이기 때문이다. ▼ 계획-전략 갖춘 개혁 추진을 그리고 어떠한 개혁이든 올바르게 추진하려면 한 분야만의 개혁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연관된 여러 분야의 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또 개혁이란 국가장기발전구상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개혁이란 종합적인 계획과 전략하에 추진되어야 하는 것인데, 과연 현재의 개혁들이 이렇게 추진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야겠다. 한마디로 말하면 비록 이 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외국 전문가들이 우리 금융위기 전망에 대해 낙관적인 시각을 갖기 시작했다고 해도 우리가 IMF체제에서 한시라도 빨리 졸업하려면 우리 국민 모두가 보다 더 근검절약을 해야 하고 동시에 필요한 모든 개혁을 종합적인 계획과 전략하에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임을 절실히 느낀다. 김기환(경제협력특별대사) 〈스위스 다보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