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모처럼 정치구조개혁에 한 목소리를 냈다. 개혁의 방향은 ‘전반적인 규모 축소를 통한 고비용구조 개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온 국민이 고통분담에 나서고 있는 마당에 정치권만 팔짱을 끼고 있느냐는 각계의 원성때문이다.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대목은 국회의원 수의 조정. 현행 헌법은 2백명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고 선거법은 지역구 2백53명에 전국구 46명 등 2백99명으로 못박고 있다. 따라서 헌법을 바꾸지않는 한 아무리 줄여도 2백명은 넘어야 한다.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은 헌법이 제시한 하한선까지 접근하고 있다. 한나라당 지방자치관계법개정특위의 김중위(金重緯)위원장은 “국회의원 정수를 2백명 선으로 줄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고 국민신당 이만섭(李萬燮)총재도 신년기자회견에서 역시 2백명선을 주장했다. 반면 국민회의는 의견이 엇갈린다. 조세형(趙世衡)총재권한대행은 “줄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지만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의 한 측근은 “그것은 조대행 생각이지 김차기대통령 생각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돈이 많이 드는 정치풍토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지 국회의원 수를 줄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일반 의원들은 도시와 농촌 지역에 따라 견해가 다르다. 선거구를 인구비례로 결정하는 만큼 인구가 많은 대도시 의원들은 대폭 축소에 적극적이지만 인구가 적은 농촌 의원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선거구제는 국민회의가 소선거구제에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가미한 독일식을 선호하고 있는 반면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은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한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란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 외에 지지 정당에도 투표를 해서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한 뒤 지역구 당선자를 우선 배정하고 나머지는 비례대표 후보들로 할당하는 방식. 조대행은 “독일의 콜수상도 비례대표제 출신으로 이 제도는 반드시 당선되어야 하는 후보의 당선을 보장해주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정당조직에 대해선 여야 모두 개편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국민회의는 중앙당을 최소인원으로 운영하고 지구당은 연락사무소 형태로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중앙당의 경우 일반사무보다 정책개발에 더 많은 인원을 배치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한나라당은 시도지부를 연락사무소로 축소하고 지구당을 후원회 조직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민신당도 지구당제를 전면 폐지하고 연락기능만 수행하는최소한의조직을 두는 쪽으로개편해야한다는입장이다. 지방의원의 정수를 줄여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대체로 여야 모두 같은 입장이다. 국민회의는 지난달 31일 당무위원 및 의원 연석회의에서 지방의원을 소폭 감축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전국적으로 일률적으로 줄이기보다 대도시 광역의원에 한해 부분적으로 감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감을 얻었다는 후문이다. 반면 한나라당과 국민신당은 아예 전국적으로 전체 숫자를 절반이나 3분의2 정도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나라당의 일부에서는 기초의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민신당의 한 관계자는 “지방의원 전체를 절반 정도 줄이고 광역의원은 기초의원 중에서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지방의원 선거구제에 대해선 국민회의는 기초 광역의원 모두 중선거구제로 개편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현재 기초의원은 소선거구제가 원칙이되 인구가 많은 지역에 한해 중선거구제를 병행하고 있고 광역의원은 모두 소선거구제이다. 국민회의는 이와 함께 기초의원도 정당공천을 허용해야 한다는 기존의 당론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기초 광역 모두 중선거구제로 개편하되 기초의원 정당공천에는 반대 입장이다. 기초단체장은 정당공천을 폐지하자는 생각이다. 국민신당은 광역의원은 중선거구제에 정당명부제를 도입하고 기초의원은 대선거구제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그러나 각 정당은 정치구조개혁에 대한 총론만 제시하고 있을뿐 아직 구체적인 각론은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특히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에 따라 전체적인 규모 축소에 동의하고 있으나 개별 사안에 따라 소속 의원들의 이해가 엇갈려 당론을 확정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송인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