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 나왔다!” 88년 9월 26일 오후2시반. ‘위험한 정사’를 상영중인 서울 명동 코리아극장에 난데없는 뱀소동이 벌어졌다. 관객 4백여명이 혼비백산해 뛰쳐나갔고 장모감독 등 2명이 애먼 소리(?)를 지른 혐의로 붙잡혀갔다. 미국 영화배급사 UIP의 첫 직배영화가 추석프로로 개봉된지 이틀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로부터 10년. UIP, 20세기 폭스, 워너브러더스, 컬럼비아, 브에나비스타 등 할리우드 5대 영화직배사는 우리에게 어떤 과실(果實)을 주었으며 어떤 과실(過失)을 남겼을까. 당시 직배 반대투쟁에 나선 영화인들의 주장은 “직배영화가 한국영화를 다 잡아먹을 것”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영화수입(輸入)에서 얻은 수입(收入)으로 한국영화를 제작해왔는데 수입권을 잃으면 방화가 설 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들의 예상이 타당했는지의 여부는 직배 이후 한국영화와 직배영화의 숫자, 수입액 등을 따져보면 알수 있다. 불행히도 그 주장은 상당부분 들어맞았다. 88년 한국영화 제작은 87편에 관객수 1천2백만명, 수입액은 2백15억원이었다. 제작편수는 91년 1백21편을 고비로 내리막길을 걸어 97년 59편으로 줄어들었고 충무로 토착자본은 힘없이 무너졌다. 영화연감에 따르면 96년 제작편수 65편, 관객수 9백76만명, 수입 4백58억원이었다. 반면 88년 UIP의 ‘위험한 정사’로 시작된 직배영화수는 97년 53편으로 쭉쭉 늘어나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영화수입국으로 우뚝 섰다. 양적 성장보다 놀라운 것은 질적 성장이다. 97년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이들 직배사의 영화시장 점유율은 96년 46.5%에 1편당 관객수 37만명으로 경쟁력에서 방화나 직배를 제외한 보통외화를 멀찌감치 따돌렸고 5개사의 총관람객은 1천4백78만명, 총수입은 5백23억원이나 됐다. 97년 흥행베스트10중 8편이 직배영화였다. 게다가 미국 본사에 송금하는 로열티는 해마다 30% 가까이 늘어나 직배사 활동시작후 96년까지 5개사의 송금액은 무려 1천3백67억원이나 됐다. 97년까지 10년간의 송금액은 1천6백억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돈이나 한국영화 초토화보다 심각한 것은 우리 정신의 할리우드화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88년 당시 영화인들은 “한국이 미국에 쇳덩이(자동차)를 팔기 위해 미국혼(영화)까지 사게 됐다”고 개탄했다. 우리 정부가 미국의 슈퍼301조 통상법에 일방적으로 굴복, 영화를 개방하지 않으면 우리 자동차의 미국진출을 제한하겠다는 협박에 영화밥상까지 내줬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10년전의 예측에 대해서는 지금도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우리가 원치 않았고 준비되지도 않은 일방적 개방으로 인해 할리우드 영화에 담긴 아메리카니즘, 미국의 세계지배 이데올로기, 인종차별주의 폭력 성도착 동성애 전쟁 등 병들고 타락한 미국정신까지 들여왔다는 주장이다. 영화는 단순한 상품소비나 오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세계관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의식(意識)산업’이라는 의미에서다. 영화직배 10년은 작게는 개인사부터, 크게는 우리 영화와 문화전반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UIP직배 반대투쟁을 하다 구속수감까지 겪었던 정지영감독은 인생관까지 바뀐 사람이다. ‘거리의 악사’ 등 촉촉한 멜로드라마를 만들며 충무로의 ‘기능적 연출가’역할을 해오던 그가 사건을 치르면서 사회의식으로 무장, ‘남부군’‘하얀전쟁’ 등 묵직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영화직배는 나 개인뿐 아니라 한국영화인의 잠재의식에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사명감을 주었달까, 그 이후 우리 영화가 질적으로 큰 성장을 했으니까요.” 영화평론가 강한섭씨(서울예전교수)도 “영화직배는 미국의 문화침략에 대한 자각을 일으키는 한편 영화시장을 키우는 등의 열매도 남겼다”고 평했다. 초창기 영화직배에 반대했다가 찬성으로 돌아선 곽정환씨(전서울시극장협회장)도 동의한다. 그는 직배영화 탓에 우리 영화 제작편수가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오히려 희소가치가 생김으로써 미국메이저영화와 경쟁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88년 당시 미국의 무역자유화논리에 속수무책으로 영화시장을 열어놓음으로써 직배사가 우리영화계에 이익분을 내놓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를 갖추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제 환란(換亂)과 국제통화기금(IMF)위기를 맞으면서 극장가에서는 오히려 ‘직배영화들의 축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95년부터 영화판에 뛰어든 대기업들이 영화수입값을 천정부지로 올려놓고 복합영화관까지 잔뜩 지은 뒤 방화제작과 외화수입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달러 폭등으로 할리우드영화 수입 10위국이라는 ‘영예’도 20위권으로 주저앉았다. 젊은 네티즌 사이에는 이왕이면 국내사가 수입한 영화를 보자는 ‘직배영화 바로보기’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접속’‘편지’ 등이 잇따라 히트하면서 “잘만든 방화 한편, 직배영화 열편보다 낫다”는 유행어도 생겨나고 있다. 위기는 기회라고 한다. IMF위기에 문토불이(文土不二), 질좋은 한국영화로 21세기 영상시대에의 도약은 가능할 것인가. 〈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