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지역에 투자한 유럽과 미국의 투자자들은 최근 좌불안석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파산관련제도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아 기업이 파산할 경우 빌려준 돈을 돌려받을 보호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는 이에 따른 구미 각국 투자자들의 불안한 심정을 다루며 아시아의 기업파산을 ‘살아있는 죽음’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기업이 지불불능상태에 빠지면 법원이 지불계획을 다시 짜도록 하거나 청산절차에 들어가 채권자들이 궁극적으로 회사 자산을 나눠 갖는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경우 파산 기업들은 멀쩡히 일상업무를 계속하는 반면 채권자들은 돈을 돌려받지 못해 곤경에 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채권자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미안하다’는 말 정도. 생생한 사례를 인도네시아에서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 상장기업의 90%이상이 사실상 지불불능상태에 있고 이중 상당수는 파산한 셈이나 외형상으로는 어느 회사도 파산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에는 파산관련법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 식민종주국이었던 네덜란드의 1백년 전 법에서 따온 모호한 회계관련 법규만 있을 뿐이다. 인도네시아 기업에 투자한 외국은행들은 “소송을 해도 돈을 돌려받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울상이다.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태국도 최근에야 외채구조조정의 조건으로 파산법 도입을 추진중이다. 따라서 태국기업들은 아직까지는 빚을 갚지 않아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백승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