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초 남자배구의 대표적 거포였던 조재학씨(49·사업). 대신고와 체신청을 거치며 선수 생활을 했던 그는 배구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 꼽힌다. 괴력의 소유자였던 그는 엄청난 점프력을 바탕으로 후려치는 스파이크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대신고를 막 졸업하고 체신청에 입단했을 때인 69년 한 실업대회에서 때린 볼이 코트에 꽂히면서 그대로 터져버렸다. 또 조재학씨는 1m86의 단신이었지만 몸이 다부진데다 워낙 점프를 많이 해 운동화가 쉽게 닳는 바람에 수시로 바꿔 신어야 했을 정도. 주먹도 권투선수를 능가할 정도여서 국가대표로 태릉선수촌에 있을 때에는 다른 종목 선수들이 그를 피해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신세대 선수들중에는 ‘조재학 신화’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당시에는 배구공이 지금처럼 잘 만들어지지 않아 터지기 쉬웠을 것이고 운동화의 질도 현재와는 비교가 안된다는 것. 조재학씨가 지금 최고의 공격수로 꼽히는 김세진 신진식(이상 삼성화재) 후인정(현대자동차써비스) 등과 대결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권순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