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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박종희/준비 안된 검찰

입력 | 1998-02-04 20:06:00


반도체 첨단기술 국외유출사건 수사착수 당시 ‘건국이래 최대의 산업스파이 사건’이라며 기세를 올리던 검찰이 내국인 연구원 16명을 구속한 뒤 주춤하는 양상이다. 첨단과학과 정보산업에 대한 전문지식 문제 때문이다. 검찰내부에서도 그야말로 전문가집단의 범법을 다스리는데 필요한 전문지식을 검찰이 갖고 있는지 자문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산업스파이’들을 연행하기 하루전 삼성전자 관계자들로부터 ‘반도체산업의 현황’‘이사건의 파장’ 등에 관한 브리핑을 받은 것이 검찰이 갖고있는 지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책 한두권을 읽어본 지식으로 돈을 받고 산업기밀을 팔아먹을 정도의 전문가들을 수사한다는 것이 애당초 버거운 일이었다”는 것이 어느 수사관계자의 토로다. 또다른 수사관계자는 “반도체 전문가를 배석시키고 진술을 받아도 생판 모르는 영어와 전문용어로 골탕먹이듯 하니, 이틀 철야수사에 머리가 터질 정도였다”며 “적어도 검찰 내부에 컴퓨터 해킹이나 첨단산업에 대한 전문팀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64메가D램의 3백여 제조공정중 특허만 해도 1백여건이 넘어 과연 이 기술을 넘긴 것이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의 법률적 판단도 어려운 일. 더구나 우리와 외교관계가 없는 제삼국을 상대로 기술이전에 따른 소송이나 제소에 대한 배려는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몇해전 환경사범에 대한 재판에서 변호사가 ‘오니’(산업퇴적물)에 대해 30여분간 장황하게 설명을 마치자 재판장이 “오니가 뭐냐”고 물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준비 안된 검찰’의 아픈 곳을 건드렸다. 그래서 검찰이 수사발표를 하면서 ‘애국심으로 무장한 한 택시운전사’ ‘온갖 회유를 거절한 양심적인 연구원 사례’ 등을 유난히 강조한 것도 전문성 부족을 덮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박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