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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배인준/日 도산증권사 「깨끗한 마감」

입력 | 1998-02-04 20:06:00


일본 4대 증권회사의 하나였던 야마이치(山一)증권이 지금 소멸중이다. 그 해체과정은 우리 금융계와 투자자 그리고 금융 종사자를 비롯한 직업인들에게 참고가 될까. 야마이치가 경영파탄에 이르러 스스로 폐업을 결정한 것은 창립 1백주년 기념식을 가진 지 7개월 뒤인 작년 11월24일. 야마이치의 몰락 원인은 이렇게 요약됐다. “거품경제 붕괴 후 8년에 걸친 증시침체에 멍이 들었다. 자산운용 기법에서도 수수료 의존형 경영에서 벗어나지 못해 경쟁력을 잃었다. 게다가 주총꾼과의 유착사실이 드러나 고위임원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2천억엔 이상의 장부외 채무가 밝혀져 시장의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이 회사 주가는 액면가까지 곤두박질했고 미국의 신용평가기관 무디스로부터 ‘투자 부적격’ 판정의 결정타를 맞았다. 결국 단기자금 조달까지 막혀 ‘공룡’은 쓰러졌다.” 그러나 비록 망했지만 야마이치 임직원 7천5백명이 회사 정리과정에서 보여준 행동은 인상적이다. 이 회사에 맡겨진 고객 자산은 24조엔(2백90조원). 19조엔은 청산작업에 들어간 지 2개월여만인 올 1월말까지 반환됐다. 나머지 5조엔 중 3조5천억엔도 반환대기중이며 1조5천억엔은 해약절차가 진행중이다. 이 방대한 반환업무 때문에 임직원들은 정상영업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청산업무가 완결되면 회사는 소멸하고 종사자들은 모두 ‘새 삶’을 찾아나서야 한다. 임직원들은 그 운명을 잘 알고 있지만 동요하는 빛이 없다고 외신은 전한다. 이들은 말한다. “시간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자신의 일은 생각할 여유가 없다.” “빨리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책임감뿐이다. 고객들로부터 ‘힘내라’는 격려편지도 오고….” “매일 휴식도 없이 고객들과 머리를 맞대다가 문득 시계를 보면 언제나 심야였다.” 회사측은 이미 작년 12월 하순 종업원의 4분의 1이 조금 넘는 2천명에게 해고계획을 통보했다. 청산업무가 궤도에 올랐다고 판단해 1차 해고대상자를 선정한 것. 물론 회사측은 직원들에게 ‘경영의 잘못’을 누누이 사죄했다. 이들 2천명은 한달남짓 동안 각자 맡은 일을 완결하고 나서 1월30일 정식 해고됐다. 해고된 여직원들은 마지막 근무가 끝난 뒤 회사 안팎에서 삼삼오오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랜 동고동락에 감사하고 내일의 행운을 빌면서 회사측이 선사한 꽃다발을 가슴에 안고. 이날 해고되지 않은 직원들도 2월말 2천3백50명, 3월말 2천수백명, 청산업무가 100% 완료되는 시점에 마지막 수백명 순으로 해고될 처지다. 야마이치 본지점에서는 이날, 먼저 떠나는 사람들과 한두달 더 일할 사람들간의 조촐한 이별파티도 있었다. 도쿄 네리마지점장은 “한사람도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자기 일을 마무리해줘서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해고사원 중 다른 회사로부터 재취업 내정을 받은 사람은 10%를 조금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는 ‘새 삶’의 예약석이 아직 없다. 도쿄 센주지점의 한 고객은 이날 “10년간 투자하면서 손해도 보았지만 온갖 주문을 성실하게 받아준 카운터 레이디(창구 여직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며 객장을 기웃거렸다. 컴퓨터의 처리능력이 달려 예탁금 반환청구를 한 뒤 3주일 이상 기다려야 했던 고객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묵묵히 참아 주었다. 겹쳐지는 풍경이 있다. 도산한 고려증권과 폐쇄명령을 받은 일부 종금사 직원들은 고용대책과 퇴직금보장 등을 요구하며 한때 예탁금 반환업무를 거부했다. 망한 신세기투신과 계좌를 인수키로 한 한국투신, 그리고 재정경제원은 고객재산 반환을 둘러싸고 책임전가에 바쁘다. 그래서 반환이 기약없이 연기되자 고객들은 데모를 벌이고 있다. 배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