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제도의 조기시행과 관련해 정부와 기업은 적극 찬성하는 입장인 반면 노동계는 정부와 재벌의 개혁을 선결요건으로 내세우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냉철히 바라봐야 한다. 정리해고제는 시행만 유예되어 있을 뿐 이미 법제화되어 있다. 정리해고가 돼도 빠른 시일내에 다시 취업할 수 있다는 보장과 그때까지 최소한의 생활비 및 취업교육비가 지원되면 노동계도 즉시 시행을 반대하지 않으리라 본다. 정부는 3조∼5조원의 기금을 조성해 최장 6개월간 실업급여를 지급하겠다고 한다. 이는 실업자 1백만명에게 매달 1백만원씩 지급할 경우 3∼5개월이면 재원이 바닥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그 후 경기불황으로 재취업이나 창업이 어려워질 경우 가계의 구매력이 감소, 수백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들의 생계마저 곤란해져 결국 우리 사회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관점에서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측의 희생에 앞서 정부와 기업측에 우선 고통분담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요구하고 있는 노동계의 주장은 일견 정당해 보인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이 개혁되더라도 실직한 노동자들이 6개월 뒤에 겪게 될 문제는 해결되지 못할 것이다. 문제해결은 당사자가 자신의 책임과 권한으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라는 기본원칙이 있다. 정부나 기업에 개혁을 요구하기에 앞서 노동계 스스로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바른 순서라고 본다. 이와 관련, 정리해고를 당하지 않고 남은 임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급여에서 일정액을 갹출해 가칭 ‘국제통화기금(IMF)상조회 기금’을 조성, 해고 근로자를 지원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해고자 전원을 지원하는 것이 어렵다면 해당 기업과 노조에서 엄격히 심사, 지원이 불필요한 임직원을 대상에서 제외하면 된다. 해고자가 너무 많아 남은 직원들이 감당키 어려울 경우 해당 업종이상 단위에서 지원하면 된다. 이것이 노동계가 정부나 기업의 신세를 지지 않고 자주적이고 주도적으로 정리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다. 어려울수록 쌀 한톨도 이웃과 나누는 우리의 미풍양속을 응용한 ‘한국적’ IMF 극복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상학(서울에듀설팅그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