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에 곤란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세상살이에 곤란이 없으면/업신여기는 마음과/사치한 마음이 생기나니/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근심과 곤란으로 세상을 살아가라 하셨느니라.’ 요즘처럼 불경의 한 대목이 실감나는 때가 없는 듯싶다. 어떤 모임에 가도 ‘오늘은 그 얘기좀 하지말자’고 약속해놓고 어김없이 화제는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모아진다. 처음에는 푸념섞인 고백. “사무실 옆 자리 빈 책상을 볼 때마다 참담하다” “아침 저녁 남편이 출퇴근하는 그 단순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뼈저리게 느낀다.” 다짐과 각오도 이어진다. “너나 따로인 줄 알았는데 실상 같은 배에 타고 있음을 깨달았다” “욕심을 줄여야 모든 것이 넉넉하다” “우리 모두 한없이 스스로를 낮춰야 한다.” 한 편에서 얻는 게 있다면 다른 쪽에서 가진 것이 줄어든다고 한탄할 일만은 아니다. 더욱이 옛날은 끼니때우기에 대한 공포였다면 지금 체감하는 불안은 예전보다 힘들어진다는 상대적 박탈감에 가깝지 않을까. 우리가 아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 헤아려본다. 휴일만 되면 도로를 꽉 채우던 차량 행렬에 끼지 못해서? 쇼핑에 바빴던 해외여행을 못가서?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아이를 몰아대지 못해서? 하나하나 따져보면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두려움’일 뿐 낙담할 필요는 없다. 언젠가 법정스님의 책에서 읽었다. ‘청빈과 빈곤은 가난을 동반하면서도 그 뜻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쪽은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고 다른 한쪽은 결핍에서 온, 주어진 가난이다.’ 청빈과 적빈 사이, 아직 선택의 여지는 남아있는 셈. 그렇다면 이제 삶을 대하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이 여전히 참이라면, 우린 서슴없이 ‘선택한 가난’앞에 나서야 한다. 고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