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기어에게 속지말라. 7일 개봉된 ‘레드 코너’를 본 관객들은 이렇게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리처드 기어가 주연임을 강조하는 이 영화는 배우의 허명에 기대어 극장표를 사서는 안된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일깨워준다. ‘레드 코너’에서 리처드 기어가 맡은 역은 지적이고 유능한 미국인 변호사다. 중국이 최초로 허가한 위성방송 계약을 마무리짓기 위해 이곳을 찾은 그는 예쁜 중국여자와 하룻밤을 보냈다가 거대한 음모에 휘말려 살인범으로 몰린다. 그러나 별로 조마조마하지 않다. ‘할리우드영화 공식’에 의해 관객은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쉽사리 알수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기어는 반인권적 중국사법제도에 ‘영웅적으로’ 맞서는 한편 중국인 여자변호사의 헌신적 사랑도 받게되는데…. 중국의 티베트침략을 비난해온 리처드 기어가 중국입국 금지자 명단에 들어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자신의 승리를 이미 알고있는 것같은 밋밋한 연기와 중국을 꾸짖기 위해 나왔다는 식의 과잉연기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것은 관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리처드 기어보다 더욱 기막힌 것은 ‘레드 코너’에 시종일관 흐르는 제국주의적 시각이다. 리처드 기어의 식기를 오물로 씻어내는 중국인 교도관, 이를 너그럽게 웃어넘기는 주인공의 모습이 한 단면이다. 탈식민주의의 오늘, 미국은 옳고 중국으로 대표되는 유색인의 나라는 야만적이라는 묘사는 중국인이 아닌 우리가 보더라도 불쾌하기 짝이 없다. 영어 못하는 이방인이라면 미국에서 같은 꼴을 겪을지도 모르므로. 당연히 중국은 모든 미국 메이저영화의 수입을 금지시키는 것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등장인물은 주인공 남녀만 빼놓고 모조리 악당일만큼 만화같다. 특히 리처드 기어에게 목숨건 사랑을 바치는 변호사 역의 바이 링은 디즈니만화속 포카혼타스 그 자체다. 그 여자는 리처드 기어가 이 야만적 중국땅에서 떠나자며 구원의 손을 내밀때 눈물을 머금고 남아서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식민지 현지처같은 얼굴을 보인다. ‘프라이드 그린 포테이토’에서 인간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 호평을 받았던 조 애브넷 감독은 극심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는 중국을 재조명하기 위해 ‘레드 코너’를 만들었다고 했다. 감독은 관객에게 교훈을 주려했지만 사실은 감독이 교훈을 얻어야 마땅하다. 감히 관객을 가르치려 들다가는 영화 자체를 망치게 된다는 것을. UIP직배영화. 〈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