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승희(咸承熙)와 이원조(李源祚). 문민정부 초기 두 사람은 숙명의 쫓고 쫓기는 관계였다. 함승희검사는 “누구라도 잡아넣으라”는 검찰 수뇌부의 말을 믿고 안영모(安永模)동화은행장의 비자금 계좌를 뒤지다 ‘금권정치’의 심장부에 접근했다. 그 길목에 이원조의원이 있었다. 안행장의 계좌는 이의원과 통하고 있었고 이의원을 잡으면 ‘노다지’가 걸려들 것으로 함검사는 생각했다. 그러나 함검사는 끝내 이의원을 만날 수 없었다. 93년 5월18일 이의원이 일본으로 달아나자 검찰 수뇌부는 공식적으로 ‘몰랐던 일’이라고 말하면서 계속 수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정의 ‘성역(聖域)’을 확인한 함검사는 수사의욕을 잃고 시간을 보내다 그 해 8월27일 미 연방수사국(FBI)으로 연수를 떠났다. 한달 후 다시 돌아온 함검사는 더 이상 대검 수사검사가 아니었다. 서산지청장으로 일방적인 인사발령을 받았다. 함검사가 대검을 떠난 직후인 10월 초 검찰 수뇌부는 이의원사건을 비밀리에 내사종결하고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11월1일 공식 인정했다. 함검사는 이후 1년 남짓 ‘시골 지청장’을 지내다 94년 10월4일 ‘자의반 타의반’으로 검찰을 떠났다. 그리고 11일 후인 10월15일 이의원은 일본에서 귀국했다. 함검사의 낙향에 이은 변호사 개업과 이의원의 무혐의 내사종결 및 귀국은 문민사정의 또다른 명암(明暗)이다. 이로써 이의원과 함검사의 악연은 끝났고 ‘살아있는 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했던 동화은행사건도 역사의 뒤안으로 밀려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