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한기가 빠진 한국과학사는 있을 수 없다. 그는 개항 이전까지 서양의 자연과학을 가장 많이 그리고 제대로 소개한, 서양과학의 전도사였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뉴턴의 만유인력에서 망원경, 온도계, 습도계, 파동(波動)의 원리, 병리학, 해부학에 이르기까지 과학에 대한 그의 관심과 식견은 놀라울 정도다. 34세 때인 1836년, 최한기는 자신의 대표작 ‘신기통(神氣通)’‘추측록(推測錄)’에서 서양물리학의 ‘파동’개념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그는 이 세상은 ‘기(氣)’로 가득차있고 그 기가 진동하여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소리’로 보았다. 렌즈와 망원경의 원리, 온도계, 습도계, 빛의 굴절 현상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최한기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소개한 것은 1857년 ‘지구전요(地球典要·각국의 지리 역사 문물 학문 등을 담은 책)’에서. 지동설이 도표와 함께 상세히 소개되기는 처음이었다. 1830년대까지만해도 지구중심의 천동설을 견지했던 최한기가 이무렵 태양중심의 지동설을 받아들인 것은 그의 과학적 식견이 원숙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 이 책엔 영어 알파벳도 소개돼 있다. 서양의학이 빠질 리 없다. 의학에 대한 최한기의 안목이 잘 드러난 책은 1866년에 나온 ‘신기천험(身機踐驗)’. 여기서 그는 의학을 우리나라 최초로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으로 구분했다. 이밖에 서양이 동양보다 해부학 병리학 등이 발달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최한기는 어떻게 그 다양한 분야의 자연과학을 접하고 방대한 저술을 남길 수 있었을까. 현재로선 관련자료의 절대 부족으로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한국과학사에 가장 찬란한 별이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자연과학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은 실천과 경험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적 세계관, 곧 진정한 실학정신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이광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