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역사’란 무엇인가. 검찰은 95년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을 수사하며 ‘역사바로세우기’를 외쳤다. 그러나 그 역사는 그보다 2년 앞서 동화은행장 사건에서 다 밝혀진 것들이다. ‘성역’으로 숨겨두었을 뿐이다. 결국 검찰의 역사는 불필요할 때는 잠재우고 필요할 때만 바로세우는 굴곡의 역사였던 것이다. 검찰은 이같은 오욕의 역사를 반복해왔다. 91년 2월 터진 수서지구 택지 특혜분양 사건은 6공 최대의 비리로 꼽힌 사건이었다. 그러나 당시 대검 중수부가 내린 결론은 “청와대 장병조(張炳祚)비서관이 주범이며 그 이상의 배후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결론은 5년도 안돼 똑같은 대검 중수부에 의해 뒤집어졌다. 노태우(盧泰愚) 당시 대통령이 한보그룹 정태수(鄭泰守)회장에게서 1백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난 것. 93년 4월 청우건설 조기현(趙琦鉉)회장 비리사건이 터졌을 때도 검찰은 ‘개인비리’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95년말 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 수사에서 노전대통령은 조회장에게서 80억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12.12 및 5.18사건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94년 10월과 95년 7월 이들 사건에 대해 각각 불기소결정을 내렸다. ‘성공한 내란은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그러나 6개월만인 96년 1월 검찰은 두 전직대통령에게 내란죄 등을 적용해 구속했다. 검찰은 이같은 오욕의 역사를 반복하다 지난해 3월 한 중소기업인에게서 ‘검찰 잣대는 마피아의 총대로 잰 잣대’라는 비난을 자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