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연극협회가 마련한 뮤지컬 ‘넌센스’의 서울공연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넌센스’의 대본을 받아든 건 1월6일이었다. 공연이 시작되는 31일까지는 2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연습기간이 이렇게 짧았던 기억이 나한테는 없다. 남들 다 쉬는 설연휴도 나하곤 무관했다. 우리 수녀들(양희경 하희라 신애라 임상아 그리고 나)은 외쳤다. 아, 연습시간이 일주일만 더 있었더라면! 그러나 우리에겐 참여하는게 미덕이라는 올림픽정신 위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의 대한민국적 오기까지 함께 지글거리고 있었다. ▼ 관격행렬 보면 가슴 훈훈 ▼ 작년에 세계연극제를 치르면서 연극계는 얼마쯤 빚을 졌었다. 게다가 올해부터 서울연극제를 국제연극제로 확대해 기금이 필요한 터이기도 했다. ‘넌센스’ 출연 제의가 왔을 때 두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난 시대 속에서 시대와 함께 숨을 쉬는 배우다. 누군가 그 빚을 갚아야 한다면 기꺼이 투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청이는 아버지를 위해서 인당수에 몸까지 던졌는데, 그렇게 가끔 무모한 생각을 하는 나를 지금도 나무랄 수 없다. 세종문화회관은 연극형식에 적합한 공연장은 아니다. 그러나 극장을 찾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기이한 행렬들…. 이렇게 마음이 추운 날들 속에서 그건 경이로웠다. 언젠가 한 방송국에서 어떤 샐러리맨에게 물었다. “이 힘든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건가요?” 문화비를 줄이겠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이런 때일수록 오히려 문화비의 지출이 커져야 한다는 내 믿음이 한순간에 쓸쓸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7년전 ‘넌센스’ 초연때부터 원장수녀역 제의를 받았었다. 그때부터 이 원장수녀가 내게 구애했다고 할까? 그러나 한편으로 의구심을 느낀다. 왜 사람들은 나를 두고 ‘그냥 수녀’도 아닌 ‘원장수녀’를 떠올리는 걸까. 내 목소리 때문에? 내가 그렇게 근엄하게 생겼나? 원장수녀는 그렇게 근엄한 수녀만 되는 건가? 그 아이러니는 ‘신의 아그네스’때도 같았다. 의사역을 원하는 나 말고 1백명중 99명은 죄다 원장수녀에 나를 대입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왜 원장수녀를 해야돼? 사람들은 왜 누군가가 꼭 잘하는 것만 봐야할까. 누구나 뭐든지 해볼 권리, 그래서 실수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 않나? 왜 사람들은 사물을 볼 때 그렇게 한쪽만 보는 걸까. 나는 늘 빈 구석이 많은 역할을 꿈꾸었다. 무섭고 엄격한 이미지는 가끔 나의 짐이며 난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신의 아그네스’에서 원장수녀역을 하면서 난 그다지 흔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자의보다는 다른 사람의 ‘억지’에 밀렸다는 자의식은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그 이후로도 7년간 장기공연되어온 ‘넌센스’의 멤버가 바뀔 때마다 내 이름은 거론됐고 7년이 지난 지금 마침내 그 작품의 원장수녀가 됐으니 인연을 어찌 소홀하게만 볼 것인가. 사람들은 “박정자 노래 잘해” 하고 칭찬하지만 음정 음역 박자에 맞출 수 있는 노래를 고를 수 있는 것과 모든 게 이미 결정돼 있는 뮤지컬은 달랐다. ▼ 원장수녀役의 끈질긴 인연 ▼ 그러나 지난 한해 무대 위에서 모노드라마 ‘그 여자 억척어멈’을 하는 동안 혼자 기댈 데 없어했던 나는 다섯명의 수녀가 똑같은 옷을 입고 춤추고 노래하는 이 무대에서 위로를 받았다. 나는 배우다. 무대 위에서만 나는 살아있는 소리를 낸다. 마침내 난 약에 취해 고쟁이까지 드러내는 원장수녀가 됐으며 수녀복을 입은 채 거짓을 위장하지 않는 그 모습을 너무 사랑하고 있었다. 이렇게 1월 한달동안 열병을 앓았고 그리고 지방공연을 남겨둔 지금 완전히 연소되었다는 걸 느낀다. 끝모를 피곤이 감싸고 깨어나면 아침인지 저녁인지도 모르는 잠을 끝없이 잤다. 그러면서도 내 의식의 끄트머리에 다음 작품을 예비하고 있다. 바보역을 하고 싶으면서도 현실에선 언제나 바보인 것도 모르고. 박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