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외환위기에 대한 경고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데도 정치권은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딴 짓들이다. 3월 대란설(大亂說)로 국민의 걱정은 태산같이 커지는데 정치권은 눈도 귀도 막았는가. 긴박한 현안을 다루기 위해 2주일 회기로 임시국회를 열어 놓고도 파행과 공전으로 아까운 세월만 허송해 남은 회기는 이제 겨우 하루뿐이다.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유보하고 뒤늦게 여야가 현안 일부에 의견접근을 보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상황전개는 여전히 어둡다. 노사정(勞使政)합의를 부인하는 민주노총의 기본입장은 바뀌지 않았고 재계도 개혁에 저항하고 나섰다. 사태가 이렇게 꼬이는 데도 정치권은 지도력을 발휘하기는커녕 지리멸렬한 혼란상만 보여왔으니 개탄스럽다. 노사를 향해서는 ‘숨 넘어갈 듯이’ 노사정 대타협을 호소하더니 정작 정치권 자신들은 싸움질만 하느라 여념이 없었으니 국민이 분노하는 것도 당연하다. 차기정부 출범에 불가결한 정부조직개편안은 다소 수정해서라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체제극복에 시급한 기업구조조정 고용조정(정리해고) 실업대책 등 ‘노사정 입법안’을 오늘 처리키로 한 것은 옳다. 민주노총이 어떻게 나오든 노사정 합의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며 따라서 국회가 관련법안 통과를 강행해도 무리는 아니다. 인사청문회 논란과 관련, 본란은 1월22일자에서 청문회를 꼭 열도록 촉구하면서 다만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고위공직자부터 우선 대상으로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본란의 충고를 귀담아 들었다면, 그리고 김종필(金鍾泌)씨가 총리를 하겠다는 사람답게 청문회에 당당히 응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면 상황이 이렇게 나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여야 샅바싸움 바람에 이제는 차기정부 출범이 11일밖에 안 남아 시간적 물리적으로도 어려움에 몰렸다. 한나라당은 법안 단독처리를 자제하고,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청문회를 언제 어떻게 열지를 명확히 밝힌 뒤 한나라당을 설득해 빨리 법제화를 마쳐야 한다. 추경(追更)예산안을 정부조직개편 확정후에 심의하자는 한나라당 주장은 명분상 옳다. 그러나 추경안은 정부개편까지를 감안해 신구정부가 함께 만든 것이고 예산확정 후에도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다. 추경안 처리를 늦추면 실업대책과 중소기업지원에 차질이 생기고 17일 열리는 I MF이사회가 불리한 결정을 내릴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다음회기로 미룬 것은 유감이다. 회기를 연장해서라도 이들 현안은 이번에 처리했어야 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김종필씨 총리지명과 내각의 50대50 배분방침에 대한 한나라당의 거부감이 국회파행의 한 요인이라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DJT합의도 좋지만 그것이 민생과 국가장래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열린 자세로 대야(對野)협상에 임하고 한나라당은 의석수를 앞세워 시위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