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는 최근 청와대 명칭 변경을 검토한 적이 있다. ‘청와대’라는 이름이 권위주의적이고 여러모로 좋지 않은 이미지가 많다는 게 개명(改名)이유였다. 불쑥 나왔다가 여론의 핀잔을 듣고 쑥 들어가버렸지만 이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하기에 따라 악명높은 권부(權府)도 되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이름으로 빛날 수도 있다. ▼ 청와대 기능위주로 변해야 김대중(金大中)차기대통령은 대화와 설득의 정치를 말한다. 앞으로 국정운영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여러번 강조했다. 김중권(金重權)청와대비서실장 내정자도 새 비서진과 청와대는 권위의 상징에서 기능의 상징으로 바뀔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말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새 대통령과 보좌진들의 마음이 국민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하고 고압적인 청와대구조와 분위기부터 기능위주로 바꿔야 한다. 청와대에 처음 들어가 본 사람들은 턱없이 거창하고 위압적인 건물앞에 기부터 죽는다. 애당초 짓기를 그렇게 지은 건물이다. 90평짜리 접견실, 40평짜리 대통령집무실에 크고 작은 연회장이 3개나 되는 본관건물은 실제 노태우(盧泰愚)대통령시절 경복궁 근정전(勤政殿)을 모델로 지었다. 청와대 입구의 신문고(申聞鼓)도 그렇지만 왕조적 냄새가 물씬 풍긴다. 영국의 총리관저는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 있는 평범한 주택 중 하나일 뿐이다. 클린턴대통령 성추문 와중에 미국 시사주간지들이 자세히 보도한 백악관 배치도를 보면 대통령과 비서진들이 수시로 만나고 복도를 오가면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 한 건물에 근무실이 모여 있다. 일본 총리관저 접견실은 15평 정도로 비좁다. 지근 거리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기자실도 총리집무실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훤히 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청와대는 기자실은커녕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들마저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본관으로 가려면 차로 5분 이상 걸리는 별도 건물에 배치돼 있다. 대통령의 위엄을 살리는 것도 기능이라면 기능이겠으나 일과 능률면에서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소매를 걷어붙인 와이셔츠 차림으로 볼펜을 들고 다니며 서로 협의하고 의논하고 지시할 수 있는 실무기능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대전같은 지밀한 곳에 앉아서 시종일관 열린 마음으로 대화와 설득의 정치를 펴기는 어렵다. 차기대통령측은 수석비서관 근무실을 본관으로 옮기는 문제를 검토중이나 높은 천장하며 워낙 궁궐처럼 지은 건물이라 개조가 쉽지 않아 고민인 모양이다. 그렇더라도 머리를 짜내면 강당같은 접견실 집무실 연회장을 과감히 줄이고 실무공간을 마련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경내 구조개선도 중요하지만 국민친화적인 청와대가 되려면 고답적인 의전(儀典)관행도 거품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임명장 수여식같은 때 거리를 두고 구령에 따라 일제히 큰 절을 올리는 풍경은 모양부터 안좋다. ▼ 지나치게 챙길땐 되레 문제 ▼ 그러잖아도 김차기대통령은 만나는 사람들의 범위가 당선후 자꾸 줄어든다고 한다. 최고권력자는 그렇게 되어 있다. 갈수록 구중궁궐에 갇히고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여 격리되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는 평소 권위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왔다. 때문에 누구보다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특히 ‘준비된 대통령’은 장점임에 틀림없으나 때로는 그것이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 아랫사람이 준비되지 않았을 경우 자칫 독선 독주를 부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너무 안챙겨서 문제였지만 김차기대통령은 지나치게 챙겨서 문제일 수 있다. 왕궁같고 절간같은 청와대에 새 주인으로 들어가는 김차기대통령으로서는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함정이다. 남중구(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