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19일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의 사망 1주기를 맞는다. 덩 사후 1년동안 후계자로 위상을 굳힌 장쩌민(江澤民)국가주석은 3월초에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권력체계 개편작업을 마무리 한다. 덩이 주창한 개혁개방노선도 충실히 이행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민주화작업도 조심스럽게 추진되고 있다. 사망 1주기를 맞는 중국에는 덩의 추모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장주석은 97년 2월25일에 거행된 덩샤오핑 추도대회에서 추도사를 읽던중 눈물을 흘렸다. 눈물을 닦느라고 네차례나 추도사 낭독을 중단한 장주석의 침통한 모습은 TV를 통해 12억 중국인민들에게 그대로 전달됐다. 그로부터 1년. 장주석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여유만만한 표정은 물론 몸가짐도 자신감에 넘쳐보인다. 11일 장주석을 예방한 김종필(金鍾泌)자민련명예총재는 “힘이 느껴지는 착 깔린 음성으로 2시간이나 이야기하면서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며 장주석의 인상적인 모습을 전했다. 덩의 사망 1주기를 맞은 장쩌민주석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그가 덩의 후계자로서 위상을 완전히 굳혔음을 말해준다. 덩의 사망이 발표된 직후 전세계는 장쩌민체제의 안정여부에 주목했다. 덩의 ‘발탁’에 의해 상하이(上海)시 서기에서 일약 당총서기가 됐고 뒤이어 국가주석 군사위주석의 3권을 움켜쥔 장주석이 덩의 후광이 사라진 후에도 과연 권좌를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었다. 추도대회가 끝난지 4일만에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류화칭(劉華淸)전군사위부주석 츠하오톈(遲浩田)국방부장 등 군수뇌부가 장주석에 대한 충성을 다짐했다. 2인자 리펑(李鵬)총리와 정적인 차오스(喬石)전인대위원장마저 “장쩌민을 핵심으로 긴밀히 단결하자”고 호소했다. 지난해 9월 개최된 제15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계기로 장주석은 명실상부한 덩의 후계자로 자리를 굳혔다. 장주석이 당총서기로 재선출된 반면 라이벌 차오스는 중앙위원에 선출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자칭린(賈慶林)베이징시서기 쩡칭훙(曾慶紅)중앙판공청주임등 심복들을 정치국에 진입시키는등 측근을 권력핵심부에 심었다. 장체제의 새로운 진용은 올3월 개최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완성된다. 이변이 없는 한 주룽지(朱鎔基)부총리의 총리선출 및 리펑총리의 전인대위원장 선출이 확실시된다. 덩의 후계자로 위상을 굳힌 장주석은 그러나 덩이 누렸던 절대적 권위를 누리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장주석이 최고의 지위를 확보했으나 어디까지나 주부총리 리펑총리와 함께 명목상 집단지도체제하의 1인자”라며 “21세기를 앞둔 시점에서 덩시대의 카리스마보다는 합리적인 리더십이 중시되는 게 중국정치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토론을 즐기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이 돋보이는 장주석이 당분간 안정적으로 중국을 이끌어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덩시대가 마감된 중국은 점진적이지만 의미있는 정치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당대회나 전인대의 대표를 뽑는 선거에서 이른바 태자당(太子黨·중국의 정치경제계에 영향력이 큰 권력층의 자녀들)이나 모범노동자 등 당이 지명한 후보들이 줄줄이 낙선하는 게 좋은 사례다. 반면 선거인들이 연명으로 추천한 ‘민선후보’들의 당선율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당이 지명한 후보들이 100% 뽑히던 시절과는 분명히 다른 분위기다. 이같은 분위기는 덩샤오핑 사망 1주년이라는 시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중국사회가 변모해가고 있는 신호이다. 〈베이징〓황의봉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