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641)

입력 | 1998-02-16 06:58:00


제10화 저마다의 슬픈 사연들 〈109〉 “당신네 집에 있는 물건 중에서 최상등품을 이 아씨께 보여드리세요.” 가게 안으로 들어간 노파는 상인에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상인은 이렇게 말하고 물건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틈을 타 노파는 저의 귓전에다 대고 속삭였습니다. “아씨, 저 상인은 얼마 전에 아내를 잃고 홀아비가 되었답니다. 무어라고 위로의 말이라도 좀 해주세요.” 그러자 저는 노파에게 말했습니다. “저분의 처지가 딱하긴 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요. 남편 이외의 외간 남자하고는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거든요.” 제가 이렇게 말했지만 노파는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아씨도 참! 저렇게 점잖고 잘 생긴 분께 위로 한마디 해준다고 해서 뭐가 어떻게 되기라도 하나요? 사람 인정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니랍니다.” 이렇게 말하고난 노파는 계속해서 온갖 말로 그 상인을 칭찬했습니다. 듣고 있던 저는 딱 잘라서 말했습니다. “쓸데없는 수작은 작작 떨어요! 필요한 물건이나 사 가지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로 해요.” 그때 상인은 제가 원하는 물건들을 모조리 꺼내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가 꺼내어놓은 물건들이란 정말이지 눈이 부실 만큼 화려한 비단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물건들이 마음에 들었으므로 물건 값을 치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상인은 저를 가로막으며 말했습니다. “아니올시다! 오늘 것은 당신께 선물로 드릴 터이니 그냥 받아주십시오!” 그가 이렇게 말하자 저는 노파를 돌아보며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만약 상인이 물건 값을 받지 않거든 물건을 되돌려 드리세요.” 그러자 노파는 다시 저의 귓전에다 대고 속삭였습니다. “아마도 저분은 아씨처럼 젊고 예쁜 여자를 보니, 얼마 전에 죽은 자신의 아내가 생각나는가 봐요. 저분은 아내를 끔찍히도 사랑했거든요.” 노파가 이렇게 말했지만 저는 흔들리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야 어쨌든 값을 치르지 않고 남의 물건을 공짜로 받을 순 없는 일이야. 그러니 그냥 돌려주도록 하세요.” 그때 상인이 말했습니다. “오, 아씨! 알라께 맹세코, 저는 물건을 돌려받지 않겠습니다. 저는 이 물건들을 돈 받고 팔지는 않습니다. 꼭 한번만 입맞추게 해주신다면 물건을 그냥 드리겠습니다. 이 가게에 있는 물건 전부보다도 저에게는 당신과 딱 한번 입맞추는 게 더 소중합니다.” 이 뻔뻔스러운 상인의 말에 저는 너무나 부끄러워 빨갛게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그러나 그러는 상인이 재미있다는 듯이 노파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참 순진하기도 하시지! 우리 아씨와 입을 맞춘다고 해서 무슨 벌이가 되나?” 이렇게 말하고난 노파는 다시 저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보세요, 아씨, 저렇게 순진한 젊은 남자와 입 한번 맞추어주는 것이 뭐 그리 못할 짓인가요? 입 한번 맞추어주고 이 물건들을 거저 가져갈 수 있다면 나쁠 거 없잖아요.” “그건 절대로 안돼! 남편과 맹세를 했다는 걸 할멈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