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3월경 서울 강남의 S아파트. 김영삼(金泳三·YS)대통령의 30년 정치적 후원자인 사업가 J씨는 슬롯머신업자 정덕진(鄭德珍·58·전서울희전관광호텔사장)씨의 방문을 받았다. 정씨는 J씨가 YS와 교분이 두터운데다 PK(부산 경남)출신 정치인은 물론 검찰 고위간부들과도 가깝게 지낸다는 말을 듣고 J씨의 친아들처럼 지내는 모인사를 통해 줄을 댔다. 잠시 뜸을 들인 정씨가 용건을 꺼냈다. “회장님, 이번에 저를 좀 도와주셔야 겠습니다. 검찰이 슬롯머신업소를 대대적으로 수사할 모양입니다. 저에 대해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J씨는 일단 정씨를 안심시켰다. J씨도 자신의 기업이 어려워 정씨의 도움을 필요로 하던 터였다. “내가 한번 알아보지요. 너무 걱정마세요.” J씨는 곧바로 YS의 측근인 청와대 고위인사 2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씨에 대해 이것저것 해명해준 것은 물론이다. 이어 J씨가 호출한 YS 가신(家臣)출신 정치인과 검찰 고위간부 K,J씨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정씨는 마음이 놓였다. 그 무렵 검찰 수뇌부는 서울지검이 건의한 정씨의 수사에 대해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서울지검 강력부 홍준표(洪準杓·현 한나라당의원)검사는 정씨의 비리혐의를 내사한 뒤 대검에 두번이나 수사를 공식건의했다. 홍검사는 서울지방국세청이 90년말에 실시한 정씨 3형제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넘겨받아 분석을 마친 상태였다. 정씨 3형제는 정덕진씨와 덕중(德重·60·전강원도의회 부의장) 덕일(德日·49·뉴스타호텔사장)씨. 정씨 형제들은 ‘평민당 김대중(金大中)총재에게 정치자금을 대줬다’는 소문이 나돌아 강도높은 세무사찰을 받았다. 정치자금 제공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씨 형제들은 1백27억원을 추징당했다. 홍검사의 수사건의에 검찰 수뇌부는 “탈세사실 이외에 새로운 범죄혐의가 없으면 수사하지 말라”며 제동을 걸었다. 정씨가 J씨를 만난 것과 대검에서 정씨의 수사에 제동을 건 사실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홍준표의원의 설명. “나는 정씨 형제의 탈세혐의보다는 이들의 뒤를 봐준 정 관계의 배후세력을 수사하려 했어요. 그런데 수사에 제동을 걸어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슬롯머신사건에 대한 내사가 진행되면서 검찰안팎에 긴장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수사가 순탄치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더군요.” ▼검찰 안팎 긴장감 고조 ▼ 89년 서울지검 남부지청에 근무할 때부터 정씨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해왔다는 홍의원의 기억. “정씨가 우리나라에서 현금이 제일 많다거나 ‘빽’이 막강해 검찰도 함부로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정씨를 수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송종의(宋宗義·현 법제처장)당시 서울지검장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슬롯머신 사건 수사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송지검장도 대검 강력부장 시절 정덕진씨의 존재를 알고 언젠가는 수사해야 할 대상으로 꼽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홍검사가 정씨를 내사하겠다고 건의하자 선뜻 허락한 것이었다. 송처장의 설명. “김대통령이 검찰에 사정을 독려하던 때였고 슬롯머신사건을 수사하면 구조적인 비리를 밝혀낼 것으로 생각했지요.” 송지검장은 박종철(朴鍾喆)검찰총장과 김도언(金道彦·현 한나라당의원)대검차장을 찾아가 설득했다. 검찰 수뇌부는 새로운 범죄사실을 밝혀내야 한다는 조건으로 승낙했다. 그러나 김의원은 “정씨에 대한 수사를 막은 적이 없다”고 수사 제동설을 부인했다. 4월16일 드디어 서울지검은 전국의 슬롯머신업소를 대대적으로 단속하겠다고 공식발표했다. 정씨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지 1주일 쯤 지난 4월 하순. 간부회의를 주재하던 송지검장의 부속실로 장학로(張學魯)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전에도 장실장이 두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송지검장은 안면도 없는 터라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부속실 여직원이 “검사장님, 청와대 장실장이라는 분의 전화가 또 왔습니다”라고 알렸지만 송지검장은 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함께 있던 간부 한사람이 무슨 내용인지 한번 받아나 보라고 권하는 바람에 수화기를 들었다. “검사장님, 서울지검에서 정덕진회장을 수사중이라는데 사실입니까. 정회장은 92년 대선 때 많이 도와준 사람입니다. 선처해 주실 수 없습니까.” 송지검장은 초면의 장씨가 무례하다고 생각해 훈계조로 한마디했다. “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알아보는 단계요. 대통령을 가까이 모시는 사람이 검찰에서 하는 사건을 놓고 전화하면 대통령께 누를 끼치게 돼요.” 장학로씨와 정씨의 관계는 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의회 부의장이던 정덕중씨는 92년 6월 당시 YS와 막역한 사이로 민주산악회원인 강원도의회 장모의원의 소개로 상도동에서 당시 민자당 대표인 YS를 만났다. 당시 YS는 강원도에서의 지지도가 오르지 않아 고민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장의원이 덕중씨를 소개한 것이다. 장학로씨가 덕중씨를 처음 만난 것도 그때였다. 그후 YS는 장학로씨를 통해 덕중씨를 부르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덕중씨는 연예계 불교계 이북 5도민회 등에 영향력이 적지 않은 동생 덕일씨도 선거운동에 끌어들였다. 92년 11월경 덕일씨는 형의 권유로 상도동에서 형과 함께 YS를 30분 동안 만났다. YS는 덕일씨에게 큰 호의를 보였다. “형을 돕는 것이 나를 도와주는 것이고 나라를 돕는 길이오. 그동안 정치적으로 오해받아 고생한 것으로 아는데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거요.” 대선이 끝난 뒤인 93년 1월14일 덕중씨는 동생 덕일씨와 함께 YS를 찾아가 두가지 부탁을 했다. “각하가 청와대에 계시는 동안 6공 때처럼 슬롯머신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더니 YS가 ‘설마 그런 일이 있을라고’ 하더군요. 또 청와대에 들어가면 연락할 길이 없으니 연락할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나중에 연락하지’라고 말했지만 그후 누구도 소개해주지 않았어요.” 홍검사의 집요한 추적에 기가 질린 정씨는 홍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따졌다. “홍검사님, 도대체 왜 그럽니까. 나하고 무슨 원수진 일이라도 있습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홍검사가 입을 열었다. “정회장님,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청담동 에메랄드호텔에 있어요.” 정덕진씨와 홍검사는 1주일 동안 다섯번이나 전화통화를 했다. “탈세부분은 철저히 조사받고 추징금도 문 것을 잘 알잖습니까. 다 끝난 사건을 이제 와서 다시 문제삼는 이유가 뭡니까.” “새로 조사할 게 있어서 그럽니다.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지 않습니까.” 홍검사가 오히려 정씨를 설득했다. ▼ "배후세력 대라" 추궁 ▼ 정씨는 마침내 월요일인 5월3일 오후4시 자진출두하겠다고 검찰에 알려왔다. 그러나 홍검사는 기다리지 않았다. 수사관 7명을 동원해 3일 새벽 6시40분 에메랄드호텔 414호실을 기습해 혼자 잠자던 정덕진씨를 체포했다. 수사관 2명이 실탄이 장전된 권총을 빼들고 객실 문 안팎에서 주변을 경계했다. 덕일씨의 설명. “형이 J씨의 영향력을 너무 믿은 것 같아요. 검찰수사가 시작되면 일단 도피하는 것이 상책인데 형은 검찰에 나가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거죠.” 그후 서울지검 특별조사실에서 홍검사와 정씨의 밀고당기는 실랑이가 며칠간 계속됐다. 애간장이 타는 쪽은 홍검사였다. 정씨에게서 끝내 자백을 받아내지 못하면 사표를 쓸 수밖에 없었다. 홍검사는 정씨의 입을 열기 위해 강온전략을 구사했다. 우선 정씨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1백만∼2백만달러를 잃고 그 돈을 한국에서 원화로 지급한 사실을 추궁했다. 검찰의 공세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정씨가 91년 부인과 공동명의로 매입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2백60만달러짜리 저택의 매입자금도 문제삼았다. 홍의원의 설명. “당시 정씨의 외화유출과 재산 해외도피는 징역 10년이상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중죄였어요. 카지노 도박과 재산 해외도피는 모두 불문에 부치겠다고 설득했지요. 그 대신 배후세력을 대라고 추궁했습니다.” 설득이 먹혀들지 않자 홍검사는 탈세한 형제를 모두 불구속처리해주겠다고 제의했다. 정씨가 목숨보다 더 아끼는 딸들의 특별면회도 허용해줬다. 정신차릴 틈도 주지 않고 계속되는 검찰의 파상공세에 마침내 정씨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구속 닷새만인 5월8일 처음으로 정씨는 천기호(千基鎬)치안감의 수뢰사실을 털어놓았다. 마침내 정씨의 입에서 메가톤급 리스트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양기대·이수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