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자주 만나지만 귀찮거나 별 의미없이 그냥 떠나보내곤 하는 손님이다. 그러나 한국화가 선학균에게 비는 남다른 존재다. 어촌 포구 장터 달동네 등 그가 화폭에 담은 세상풍경에는 언제나 비가 내리고 있다. 굵은 장대비로, 때로는 이슬비의 가볍고 촉촉한 떨림으로 사물을 적신다. 서울 종로구 관훈동 종로갤러리(02―737―0326)에서 열리고 있는 ‘선학균전’. 작가의 10번째 개인전으로 17일까지. 미술평론가 박용숙은 “작품들마다 동양적 신비주의의 냄새가 가득하다”며 “빗방울이 상징하는 점과 선의 결합이 생명의 태어남과 죽음이 수시로 교차하고 있는 자연세계의 법칙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자연율(自然律)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생의 찬미’‘연(蓮)의 꿈’‘전설97’…. 작품에 등장한 빗방울은 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일관된 화두를 던지며 대지 위로 낙하한다. 전시는 20∼26일엔 강릉이화미술관(0391―645―4014)으로 이어진다. 〈김갑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