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시청률표, 다른 손에는 광고판매율표.” 국제통화기금(IMF)한파로 찬바람을 맞고 있는 방송가에 새로운 ‘살생부(殺生簿)’가 나왔다. PD들의 성적표로 불리며 숨통을 죄던 시청률표에 이어 최근 프로그램별로 수치가 기록된 광고판매율표가 등장한 것이다. 방송광고법상 TV광고는 프로방영시간의 10%를 할 수 있다. ‘그대 그리고 나’같은 60분 드라마라면 6분을 광고시간으로 할애할 수 있는 것. 15초짜리 광고 24개를 붙였을 때 광고판매율은 100%가 되는 셈이다. 지금까지 광고판매율은 광고 관계자와 몇몇 방송사 간부들만 볼 수 있었던 대외비에 속했다. 그러나 SBS는 12일 이 자료를 아예 PD들에게 공개적으로 배포했다. 시청률 뿐만 아니라 담당프로의 ‘영업성적’을 끌어올리려는 취지다. 한 PD는 “광고판매율표를 받는 순간 영업사원으로 전락한 느낌이 들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면서도 “그러나 최근 열악한 방송사 광고사정 때문에 대부분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TV 3사 중 유일하게 일선 PD에게 시청률표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주장해온 KBS도 마찬가지. 오락분야의 한 고참급 PD는 “간부들이 시청률은 물론 광고판매율까지 수시로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IMF한파가 본격적으로 밀어닥친 지난 1월 광고판매율은 50∼60%에 불과했다. 방송사 중 MBC가 60.7%로 유일하게 60%대를 겨우 넘어섰고 KBS2와 SBS는 각각 54.2%와 53.1%였다. 지역민방은 사정이 더욱 나쁘다. 대부분 30%대이고 심지어 10%를 밑도는 경우도 있다. 50%가 넘는 수치로 시청률 1위를 기록중인 MBC ‘그대 그리고 나’도 2월 첫주 방영분에서 광고시간중 15초가 빠졌다. MBC 간판프로인 ‘뉴스데스크’도 평균 2,3개꼴로 CF가 빠졌고 SBS ‘8뉴스’는 뉴스가 끝난 뒤 나오는 CF가 하나도 없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 또 전혀 광고가 따라붙지 않는 프로도 있어 방송사의 행사안내 등으로 시간을 때우는 실정이다. 반면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사랑의 스튜디오’, SBS ‘이홍렬쇼’ ‘모래시계’, KBS2 ‘맨발의 청춘’ 등은 자기몫으로 떨어지는 광고시간을 채우는 ‘효자’ 프로로 꼽힌다. 그러나 PD들의 고민은 시청률과 광고판매율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광고주들이 광고요금이 비싼 SA급 시간대(밤8∼11시)보다 광고단가가 낮은 시간대, 청소년과 20대 여성에게 잘 알려진 프로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PD들은 “경영진이 겉으로는 IM F 시대 방송의 책임을 강조하지만 시청률과 광고판매율표까지 들이대는 상황에서 이같은 말은 공염불”이라며 이제는 시청자에게 영합할 뿐만 아니라 광고주에게도 아부해야 할 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갑식기자〉